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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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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오래된 집이 아니라 오래 갈 집

 

 

창원문화재단 기획전시 <생태의 집-한옥>으로 읽는 자연·관계·미래의 공간
전시가 끝나갈 무렵에는 처음보다 더 천천히 보아야 할 것들이 있다. 작품 앞에 오래 머물렀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결, 설명을 읽은 뒤 다시 눈에 들어오는 장면, 한 번 지나쳤지만 마음에 남아 되돌아보게 되는 질문들이다. 창원 문화재단 기획전시 <생태의 집 – 한옥>은 그런 방식으로 다시 보아야 할 전시다. 한옥을 전통 건축의 형식이나 옛 집의 이미지로만 소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오늘의 삶이 잃어버린 감각과 앞으로 회복해야 할 관계를 묻기 때문이다.
한옥은 오랫동안 자연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집이었다. 바람이 드나드는 길, 계절에 따라 빛을 조절하는 처마, 흙과 나무와 종이 같은 자연 재료, 겨울을 품은 온돌과 여름을 건너는 마루,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마주 보게 하는 마당까지. 한옥의 구조에는 단순한 건축 기술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스며 있다. 이번 전시는 바로 그 태도를 오늘의 미술 언어로 다시 불러낸다. 한옥을 ‘과거에 있었던 집’이 아니라 기후 위기와 공동체의 단절, 빠르게 변 화하는 생활 방식 속에서 다시 생각해야 할 ‘미래의 집’으로 바라보게 한다.
전시는 세 개의 길로 이어진다. ‘자연을 담은 집, 한옥’에서는 한옥이 자연의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피고, ‘관계의 집, 한옥’에서는 집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어떻게 연결하는지 돌아본다. 마지막 ‘미래의 집, 한옥’에서는 기술과 상상력을 통해 한옥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다시 해석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세 섹션은 각 각 다른 이야기를 건네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우리는 어떤 집에서, 어떤 관계를 맺으며, 어떤 미래를 살아가야 할까.

 

자연을 담은 집, 한옥
전시의 첫 장은 한옥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한옥에서 자연은 창밖의 풍경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바람은 창호를 지나 실내로 들어오고, 햇빛은 처마 끝에서 걸러지며, 흙과 나무는 집의 피부가 된다. 한옥은 자연을 차단하기보다 받아들이고, 조절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래서 이 섹션의 작품 들은 ‘집’이라는 구조 안에 담긴 자연의 리듬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김선두 작가는 국가민속문화유산 정읍 김명관 고택의 흙벽에서 받은 인상을 작품으로 옮긴다. 흙벽은 오래된 집의 배경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 작가는 두 폭이 한 쌍을 이루는 병풍 형식 안에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함께 담아낸다. 작품 <지지 않는 꽃>은 제목 그대로 쉽게 사라지지 않는 생명력을 떠올리게 한다. 꽃은 피고 지지만, 한옥이 품은 자연의 감각은 오랜 시간 사람들의 삶 속에 남아 있다. 
안윤모 작가의 작품은 어린 시절 한옥에서 보낸 기억에서 출발한다. 계절마다 피어나던 꽃, 마당의 풍경, 집 안에서 자연을 바라보던 순간들이 화면 안에 따뜻하게 자리한다. 특히 ‘차경’의 개념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차경은 바깥 풍경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함께 바라보는 방식이다. 한옥은 풍경을 소유하지 않는다. 다만 바라보고, 빌려오고, 함께 살아간다. 안 윤모의 화면 속 한옥은 그래서 기억 속 집이면서 동시에 자연과 사람이 서로 기대어 사는 풍경이 된다. 
호해란 작가는 돌이라는 재료를 통해 한옥의 품을 이야기한다. 돌은 단단하고 차가운 재료이지만, 작품 속에서는 오히려 쉼과 안정의 감각을 전한다. 전통 한옥의 지붕 아래 편안히 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집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한다. 집은 단지 비와 바람을 막는 구조물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잠시 내려 앉을 수 있는 자리다. 단단한 돌이 부드러운 휴식의 장면으로 바뀌는 순간, 한옥은 사람을 감싸는 공간으로 다가온다.

 


관계를 잇는 집, 한옥
한옥의 중심에는 마당이 있다. 마당은 비어 있는 공간이지만, 아무것도 없는 공간은 아니다. 가족이 오가고, 이웃이 머물고, 계절의 변화가 드나드는 자리다. 방과 방, 안과 밖, 사람과 자연 을 연결하는 마당은 한옥을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관계의 공간으로 만든다. 두 번째 섹션 ‘관계의 집, 한옥’은 바로 이 연결의 감각을 현대미술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김도영 작가는 한옥의 평면 구조를 한글 자음 형태로 새롭게 해석한다. 한옥의 공간과 한글의 형태는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작품 안에서는 하나의 질서로 만난다. 한글이 소리를 담는 구조라면, 한옥은 삶을 담는 구조다. 익숙한 자음의 형태 속에서 한옥의 공간을 발견하는 경험은 관람객에게 작은 낯섦을 준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지나쳤던 문자와 집의 구조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남경민 작가는 조선시대 화가 정선과 신윤복의 화실을 상상해 화면에 담는다. 작가는 장시의 생활 모습과 자료를 바탕으로 화실을 세심하게 구성하지만, 정작 화가가 있어야 할 자리는 비어둔다. 이 빈자리는 관람객을 작품 안으로 초대한다. 우리는 그곳에 앉아 화가의 시선으로 방을 바라보고, 그림이 탄생했을 순간을 상상하게 된다. 한 옥의 방은 단지 생활의 공간이 아니라 사유와 창작이 머무는 자리였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백승호 작가는 풍경에서 석탑과 기와지붕만 남기고 나머지 요소를 덜어낸다. 작가는 디지털 파노라마로 추출한 이미지를 철선으로 하나하나 이어 붙이며, 반복적인 손작업을 통해 새로운 형태를 만든다. 많은 것을 덜어냈지만 오히려 공간의 본질은 더 선명해진다. 관람객은 남겨진 선과 구조를 따라가며, 한옥과 전통 공간이 어떻게 축조되고 기억되는지 떠올리게 된다. 
이종근 작가는 수백 장의 사진을 겹쳐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눈 내린 종묘를 오랜 시간 촬영하고 다시 하나의 화면으로 재구성한 작업은 단일한 순간이 아니라 시간의 층을 남아낸다. 한옥의 처마와 주변 자연은 한 장면에 머무르지 않고, 시간과 함께 깊어진다. 하루.K 작가는 조선시대 왕릉도의 형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한옥 마당을 배경으로 음식과 차 문화, 전통놀이와 자연이 어우러진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 작품 속 한옥은 엄숙한 유산이 아니라 함께 먹고, 놀고, 머무는 축제의 공간이 된다.

 


미래를 상상하는 집, 한옥
이번 전시가 흥미로운 이유는 한옥을 과거에 가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옥은 보존해야 할 전통이지만, 동시에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세 번째 섹션 ‘미래의 집, 한옥’은 디지털 기술과 현대적 상상력을 통해 한옥의 감각을 다시 불러온다. 오래된 구조와 새로운 기술이 만날 때, 한옥은 더 이상 박제된 유산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잇는 살아 있는 문화가 된다.
노치욱 작가는 천 년의 시간을 품은 상원사 동종을 디지털 기술로 다시 울린다. 실제로는 들을 수 없는 종소리를 3D 기술로 구현해,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새로운 감각을 제안한다. 깊고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는 한옥의 정신과도 닮아 있다. 눈에 보이는 구조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흐르는 시간과 울림이다. 작품은 관람객에게 오래 된 문화유산을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경험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이움 작가는 AI 이미지 생성 기술을 활용해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상상한다. 역사적 사실과 기술적 상상력이 만나는 이 작업은 전통을 바라보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과거는 변하지 않지만, 과거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계속 변화한다. 이 작품은 한옥과 전통문화 역시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오늘의 질문 속에서 다시 해석될 수 있음을 말한다. 
이처럼 <생태의 집-한옥>은 한옥을 ‘옛것’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옥이 가진 자연의 감각, 열린 관계, 시간의 깊이를 오늘의 기술과 예술로 다시 번역한다. 전시가 말하는 미래는 낯선 첨단의 세계만이 아니다. 어쩌면 미래는 오래된 지혜를 다시 읽는 일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관람 포인트
전시를 볼 때 가장 먼저 떠올려볼 질문은 “이 작품은 한옥의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이다. 기와지붕이나 마당처 럼 눈에 보이는 형태일 수도 있고, 바람과 빛, 쉼과 기억, 관계와 시간처럼 보이지 않는 감각일 수도 있다. 작품을 정답처럼 해석하려 하기보다, 한옥이 품은 여러 감각을 따라가며 천천히 보는 것이 좋다.
두 번째 관람 포인트는 ‘비어 있는 공간’을 보는 것이다. 한옥의 마당은 비어 있어서 많은 일을 가능하게 한다. 남 경민의 화실 속 빈자리, 백승호의 작품에서 덜어낸 풍경, 이종근의 사진 사이에 쌓인 시간도 모두 비어 있음으로 써 더 많은 상상을 만든다. 전시장 안에서 무엇이 채워져 있는지뿐 아니라 무엇이 비워져 있는지를 함께 보면 작 품의 의미가 더 깊어진다.
세 번째는 ‘재료와 감각’을 살피는 일이다. 흙벽, 돌, 철선, 사진, 디지털 사운드, AI 이미지까지 이번 전시에는 다 양한 재료와 매체가 등장한다. 이 재료들은 모두 한옥을 똑같이 재현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 아니다. 각자의 방식 으로 한옥이 가진 자연성, 안정감, 시간성, 공동체성을 불러낸다. 작품 앞에서 재료가 주는 온도와 질감, 소리와 분위기를 함께 느껴보면 전시는 훨씬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전시와 연계해 운영되는 <창원 한옥 생태문화 투어> 역시 전신의 의미를 확장하는 프로그램이다. 현대미술로 만난 한옥의 감각을 창원의 집, 진해루 일대와 연결해 다시 바라보는 과정은 전시장을 나와 도시 속에서 한옥의 가치를 이어가는 경험이 된다. 전시가 작품 앞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창원의 역사와 자연, 시민의 일상 속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생태의 집- 한옥>은 우리에게 과거로 돌아가자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오래된 집 안에 남아 있는 삶의 지혜를 오늘 다시 읽어보자고 제안한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방법,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열린 자리를 만드는 법, 빠른 변화 속에서도 오래 갈 가치를 붙드는 태도. 전시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해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옥은 오래된 집이 아니라, 오래 갈 삶을 묻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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