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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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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 공연은 마을이 되고, 마을은 무대가 된다

공연은 마을이 되고, 마을은 무대가 된다

글. 윤 해 리

 

전민규와 큰들문화예술센터가 이어온 마당극 공동체

  공연은 보통 무대 위에서 시작되고 객석의 박수와 함께 끝난다. 그러나 어떤 공연은 무대 밖으로 걸어 나와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고, 마을의 풍경을 바꾸며, 지역의 기억을 다시 살아나게 한다. 마당극을 오래 이 어온 큰들문화예술센터의 활동은 바로 그런 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민규 예술감독을 중심으로 이어져 온 큰들의 시간은 작품을 만들고 공연하는 일에만 머물지 않았다. 지역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고, 예술가들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을 만들고, 공연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동체의 언어가 되도록 해왔다. 이곳에서 마당극은 특정한 날에만 열리는 행사가 아니라, 지역의 삶과 역 사, 웃음과 눈물이 함께 모이는 자리다.
  큰들문화예술센터는 1984년 창단 이후 마당극과 풍물, 노래 등을 통해 민족문화의 현대적 계승과 지역문화 발전을 목표로 활동해 온 단체로 소개된다. 일본 한국문화원 자료에 따르면 큰들은 창단 이후 국내외에 서 2,600여 회의 공연을 이어왔고, 한국 전통예술의 신명을 국내 관객은 물론 해외 무대에도 전해왔다. 
  큰들의 활동은 ‘공연단체’라는 이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들은 무대를 만들었고, 관객을 만났고, 교육과 축제를 통해 지역 안에 예술의 자리를 넓혀왔다. 그리고 그 흐름은 산청 큰들마당극마을이라는 독특 한 공간으로 이어졌다. 공연이 마을이 되고, 마을이 다시 무대가 되는 과정이다.

 

마당극, 사람들 사이에서 완성되는 예술

  마당극을 이해하려면 먼저 ‘마당’이라는 공간을 떠올려야 한다. 마당은 닫힌 극장이 아니다.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가 오가고, 잔치와 놀이가 벌어지던 열린 공간이다. 마당극은 바로 이 열린 공간의 감각을 바 탕으로 한다. 무대와 객석을 엄격하게 나누기보다, 배우와 관객이 서로의 반응을 주고받으며 함께 분위기 를 만들어가는 공연이다.
  오늘날의 마당극은 전통연희의 요소와 현대연극의 문제의식이 결합한 공연 양식으로 볼 수 있다. 탈춤, 판 소리, 풍물, 민요, 몸짓, 해학과 풍자 같은 전통적 감각을 품고 있지만, 단순히 옛 공연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지역의 역사, 민중의 삶, 공동체의 이야기, 오늘의 사회적 고민을 무대 위로 끌어올리며 현재의 관객과 만난다.
  마당극에서 중요한 것은 완벽하게 닫힌 이야기보다 ‘함께 만들어가는 판’이다. 배우는 대사를 하고 노래를 부르지만, 관객의 웃음과 추임새, 박수와 호응도 공연의 일부가 된다. 관객은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공연의 리듬을 함께 만드는 사람이다. 그래서 마당극은 보는 공연이면서 동시에 참여하는 공 연에 가깝다. 배우와 관객 사이에 오가는 에너지, 그날의 분위기, 현장의 반응이 공연의 결을 바꾼다.
  또한 마당극은 이야기의 방식에서도 독특한 힘을 가진다. 무겁고 어려운 주제도 해학과 노래, 과장된 몸짓과 풍자를 통해 관객에게 가깝게 다가간다. 권위 있는 인물은 우스꽝스럽게 그려지고,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무대 위에서 크게 울린다. 마당극은 웃음을 통해 현실을 비틀어 보고, 신명을 통해 삶의 고단함을 풀어내며, 관객이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이런 특성 때문에 마당극은 지역의 이야기와 잘 맞닿는다. 마을의 전설, 지역의 역사적 인물, 농촌의 삶, 공동체의 애환은 마당극 안에서 노래와 대사, 장단과 몸짓으로 다시 태어난다. 관객은 그것을 멀리 있는 예술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삶 가까이에 있는 이야기로 만난다. 지역의 언어와 정서가 살아 있고, 관객의 반응이 공연 안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마당극은 특정 지역의 기억과 감정을 담아내기에 적합한 형식이다.
  큰들문화예술센터가 오랫동안 마당극을 이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당극은 사람을 모은다.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웃고, 장단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무대 위 인물들의 사연에 자신의 삶을 겹쳐 본다. 공연은 지나간 이야기를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지금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감정을 함께 흔들고, 지역 안에서 함께 기억할 장면을 만든다.
  전민규 예술감독을 중심으로 한 큰들의 활동은 마당극을 단순한 전통공연의 재현으로 두지 않는다. 전통 연희의 신명과 오늘의 이야기, 지역의 역사와 현재의 삶을 함께 엮어내며, 마당극이 지금도 유효한 공연예술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큰들에게 마당극은 무대 위에서만 완성되는 작품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고 지역의 이야기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공동체의 방식이다.

 

산청의 이야기가 무대가 되다

  큰들문화예술센터와 산청의 인연은 지역 역사와 문화유산을 무대화하는 과정에서 더욱 깊어졌다. 산청군 자료에 따르면 큰들은 2008년 산청한방약초축제에서 의성 허준의 일대기를 그린 마당극 〈의원 허준〉을 주제공연으로 선보이며 산청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효자전〉, 2018년 남명 조식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남명〉 등 산청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지역의 역사와 인물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단순히 소재를 빌려오는 일이 아니다. 역사책 속 이름을 공연으로 옮기는 것도 아니다. 마당극은 그 인물이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 그 이야기가 오늘의 지역민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를 다시 묻는다. 허준의 삶은 산청의 한방문화와 만나고, 남명 조식의 이야기는 지역의 정신문화와 연결된다. 공연은 지역이 가진 기억을 다시 꺼내 시민들이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장면으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예술은 지역을 새롭게 읽는 방식이 된다. 우리는 자신이 사는 곳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익숙한 것은 때로 잘 보이지 않는다. 공연은 그 익숙한 이야기에 다시 생기를 준다. 배우의 몸과 목소리, 장단과 웃음, 관객의 반응이 더해질 때 지역의 역사는 고정된 기록이 아니라 오늘의 감각으로 되살아난다.
  큰들의 마당극이 지역에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지역을 배경으로 삼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의 역사와 사람, 문화유산을 다시 무대 위로 불러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연은 지역민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 되고, 외부 관객에게는 그 지역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입구가 된다.

 

공연장이 아니라 마을을 만들다

  큰들의 활동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공연이 실제 삶의 공간으로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산청 큰들마당극 마을은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자, 공연과 생활이 함께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2019년 산청군 내수지구 신규마을 조성사업을 통해 큰들문화예술센터 마당극마을이 준공되었고, 관련 보도는 이 사업을 농촌지역 인구 유입뿐 아니라 예술가 공동체 활성화와 입주민 삶의 질 향상을 함께 도모한 사례로 소개했다. 
  이 마을은 일반적인 공연장과 다르다. 공연을 위해 잠시 방문하는 공간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살아가고, 연습하고, 관객을 맞이하는 생활의 터전이다. 단원과 가족들이 함께 살아가며 예술가 공동체를 이루는 곳 이라는 점에서, 큰들마당극마을은 지역 예술의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예술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작품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머물 수 있는 공간, 함께 살아갈 관계, 다시 공연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

  큰들마당극마을에서는 공연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는다. 마을은 무대가 되고, 마을의 길과 마당, 공연장은 관객이 예술을 만나는 장소가 된다. 이곳에서 관객은 단순히 공연장 좌석에 앉아 작품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살아가는 공간에 들어와 그 분위기를 함께 경험하는 사람이 된다.
  최근에는 큰들마당극마을 일대에서 공연예술제가 열리기도 했다. 2026년 큰들마을 공연예술제는 산청 큰들마당극마을 일대에서 진행되었고, 전용 실내공연장뿐 아니라 마을 안의 카페극장, 냥이극장 등 다양한 공간을 활용해 관객에게 독특한 예술 경험을 선사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는 마을이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문화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공연은 공연장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마을의 여러 장소로 흩어져 사람들을 만난다. 예술가들이 사는 공간이 관객에게 열리고, 관객은 마을을 걸으며 예술을 경험한다. 공연은 마을의 하루 속으로 들어오고, 마을은 다시 하나의 무대가 된다.

 

 

 

공동체가 예술을 지속하게 한다

  지역 예술이 오래 지속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뛰어난 작품도 중요하고, 재능 있는 예술가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예술가가 계속 살아가고 작업할 수 있는 환경,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공간, 지역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큰들문화예술센터의 활동은 이 질문에 하나의 답을 보여준다. 큰들은 지역의 이야기를 공연으로 만들었고, 공연을 통해 사람을 모았으며, 예술가들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을 만들었다. 작품 하나가 끝나도 그 관계와 공간은 남는다. 다음 공연을 준비할 사람들, 다시 찾아올 관객, 함께 기억할 이야기가 이어진다.
  마당극은 본래 공동체적 예술이다. 마당은 혼자 점유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장소다. 마당극의 신명은 배우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반응, 장단의 흐름, 함께 웃고 호응하는 분위기 속에서 완성된다. 큰들의 활동은 이 마당극의 정신을 실제 삶의 방식으로 확장해왔다고 볼 수 있다.
  전민규 예술감독의 이름이 큰들문화예술센터와 함께 기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사람의 예술적 성취만이 아니라, 지역 안에서 예술이 지속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왔다는 점이다. 작품을 만들고, 단체를 이끌고, 마을을 조성하며, 지역의 역사와 사람을 계속해서 무대 위로 불러낸 시간은 지역 예술이 무엇으로 유지되는지를 보여준다.

 

지역에서 예술이 살아간다는 것
  지역 예술은 중앙의 공연을 가져오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역 안에서 만들어지고, 지역의 이야기를 담고, 지역의 사람들이 함께 향유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문화가 된다. 큰들문화예술센터와 큰들마당극마을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산청의 역사와 문화유산은 큰들의 마당극을 통해 다시 말 걸고, 예술가들이 살아가는 마을은 관객을 맞이하는 문화공간이 된다. 이곳에서 공연은 무대 위 사건이 아니라 마을의 삶과 연결된 경험이 된다. 사람들은 공연을 보러 오지만, 동시에 예술가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지역이 어떻게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함께 보게 된다.
  공연은 사라지는 예술이다. 막이 내리면 배우의 목소리도, 관객의 웃음도, 그날의 장단도 사라진다. 그러나 좋은 공연은 사라진 뒤에도 사람들 사이에 남는다. 함께 본 기억으로, 다시 찾고 싶은 장소로, 다음 세대에게 들려줄 이야기로 남는다. 큰들의 마당극과 큰들마당극마을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 남는 힘이다.

  공연은 마을이 되고, 마을은 다시 무대가 된다. 그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예술이 사람들의 삶 가까이에서 오래 지속될 때, 공연은 하나의 작품을 넘어 공동체의 문화가 된다. 큰들문화예술센터가 이어온 시간은 지역 공연예술이 지속되기 위해 필요한 사람, 공간, 이야기의 힘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힘은 오늘도 마당에서, 마을에서, 관객과 만나는 새로운 무대 위에서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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