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NOTE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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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행] 도시가 조각을 품는 방식

독일 뮌스터, 조각이 잇는 몸·장소·시간

글. 김 동 완 (경남대학교 교수)

 

이제 한국의 도시에서 조각 하나 만나는 일은 일상적이다. 길을 걷다가 낯선 물체 앞에서 걸음을 늦추고 잠시 바라보기도 한다. 작품의 이름이나 작가를 알지 못해도 눈길이 머문다. 그런 정보를 바로 찾아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워 보인다는 판단, 가까이가 보고 싶다는 충동, 지나가며 다시 돌아보게 되는 감각을 그 조각이 줄 수 있다면 이미 그 조각은 도시를 꾸미는 가벼운 장식품이 아니다.

 
도시를 텍스트로 보려는 많은 시도가 있지만 여전히 도시는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어쩌면 그렇게 읽어보려는 시도를 봉쇄하는 듯, 복잡한 도시의 구성이 도시의 미덕처럼 칭송받기도 한다. 그런데 조각은 그 난해한 책에 끼운 책갈피처럼, 도시를 감각하는 첫 페이지를 표시한다. 책갈피가 책의 내용을 대신할 수는 없다. 다만 어느 페이지에서 멈추었는지,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무엇을 다시 보아야 하는지를 가리킨다. 조각도 도시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물체 하나에 머문 시선이 그 물체와 몸의 비례, 그것이 놓인 위치, 그곳으로 접근하는 길, 그리고 그 장소의 지나온 시간을 차례로 보게 하는 것, 그것이 도시 공간에서 조각이 가진 잠재력이다. 


먼저 우리에게 청계천의 스프링(Spring, 2006)으로 잘 알려진 작가 클래스 올덴버그의 1977년 작품 《Giant Pool Balls》에서 시작한다. 이 작품은 뮌스터 아아제(Aasee) 호수 북쪽 제방의 테라스에 놓인 지름 3.5미터 철근콘크리트 구 세 개다. 그의 과장된 당구공은 익숙한 호숫가의 비례를 낯설게 만든다. 당구공의 크기는 당구를 즐기든 그렇지 않든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손으로 쉽게 쥘 수 있고, 호주머니에 들어 갈 만한 크기다. 그래서 한눈에 보아도 사람의 몸보다 훨씬 큰 구 세 개 앞에서는 손과 물체의 관계를 다르게 읽어 볼 수 있다. 손바닥의 감각으로 짐작하던 둥근 물체가 몸으로 둘러보아야 할 덩어리가 되면서, 테라스의 넓이와 물가까지 함께 가늠하게 되는 것이다.


세 개의 구는 홀로 떠 있는 물체가 아니다. 그것을 보려면 테라스 위에 서고, 물가 쪽과 제방 쪽에서 거리를 달리하며, 구와 사람 사이에 남는 빈 공간을 지나야 한다. 물체의 비례는 이렇게 몸의 비례와 분리 되지 않고, 그 둘 사이의 거리는 다시 장소의 형태를 드러낸다.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아카이브(Skulptur Projekte Archiv)의 작품 해설에 따르면, 올덴버그의 처음 제안은 도시 곳곳에 제한 없이 구를 두는 것이 었다. 그의 상상 속에서 뮌스터라는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당구대였다. 그러나 1977년 전시에 실제로 설치된 것은 도시 전체로 퍼지는 무제한의 구가 아니라, 당시 전시가 감당할 수 있는 조건에 맞춘 세 개의 구 였다. 처음 구상대로 설치되었을 때의 경관이 궁금하고 아쉬운 마음은 남는다. 그래도 아아제 호수의 테라스에 흩어진 세 개의 구는, 배와 자전거와 산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치 거대한 당구공이 굴러 들어온 듯한 풍경을 만든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둥근 윤곽만이 아니다. 구가 놓인 테라스, 물가를 향해 열린 방향, 그 곁을 지나는 행인이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장소들이 하나의 작품을 연출한다. 세 개의 구는 호숫가에 고정되어 있지만, 이 작품은 늘 변한다. 날씨에 그대로 노출된 조각과 어느 하나 같지 않은 행인의 개입은 매 순간을 원본으로 만들고, 조각이 장소와 맺는 장면은 그때마다 조금 다른 비례를 드러낸다. 조각을 본다는 일은, 그러므로 물체 하나를 보는 일이 아니라 그 물체가 장소의 일부가 되는 과정을 보는 일이다. 


변화하는 장소, 유동하는 경관을 더 적극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특정 입지에 고정된 조각의 틀을 깨는 실험에서 장소는 조각 뒤에 조용히 서 있는 배경이 아니다. 1977년 마이클 애셔가 Hymer–Eriba Familia 캠핑 트레일러를 빌려 세운 《무제》(통칭 캐러밴)는 작품이 한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을 흔든다. 애셔의 트레일러는 19주의 전시 기간 동안 매주 다른 곳에 주차되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평범한 일상의 공간을 선 택했다. 가로수가 늘어선 길가, 공공주택 단지 앞, 골목, 주차장. 커튼은 닫혀 있었고 문은 잠겨 있었으며, 이것이 작품임을 알리는 표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캠핑 트레일러는 그저 캠핑 트레일러였다. 애셔는 관람 이라는 행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방식으로 조각을 도시에 풀어놓았다. 누구나 지나칠 수 있지만 누구도 관람할 수 없는 이 트레일러는, 도시에서 공적인 것이 어디까지 열려 있고 어디서 닫히는지를 되묻는다.

 

이 작업은 10년마다 반복되었다. 1987년, 1997년, 2007년, 애셔는 같은 차종을 다시 빌려 같은 지점에 같은 순서로 세웠다. 그러나 반복이 일관성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도시도 변했고, 같은 차종이라 해도 같은 차량은 아니었다. 30년의 반복에서 뮌스터의 도시 변화가 기록되었다. 길이 뚫리고, 새 건물이 들어서고, 주차 규정도 바뀌었다. 조각이 도시를 측정하는 기준이 된 셈이다. 2007년의 사건은 극적이다. 어느 7월 밤, 젊은 작가 몇이 지정된 지점에 주차된 트레일러를 자기 차에 걸어 시외로 끌고 갔다. 이틀 뒤 트레일러는 뮌스터 동쪽의 한 숲에서 버려진 채 발견되었다. 경찰은 큐레이터 카스퍼 쾨니히(Kasper König) 에게 작품의 가액을 물었다. 쾨니히는 지정된 지점에 주차되어 있지 않은 동안에는 그것이 예술이 아니라고 답했다. 버려진 트레일러는 1977년의 그것도 아니었고, 조각 설치 장소로 정해진 곳에 주차된 것도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작품으로서 가치가 없는 그저 버려진 트레일러였다. 


이 도난 사건은 이 작업이 말하지 않던 하나의 조건을 드러냈다. 이 작품의 진본성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서 있던 장소에 있었다. 그 위치를 벗어난 트레일러는 낡은 트레일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것이 예술이 되는 순간은 어떤 장소에 연결되는 바로 그때였다. 유동하는 경관을 사유한다는 것은 바로 이 전환의 조건을 묻는 일이다. 


애셔의 캐러밴은 이동했고, 이동은 그 자체로 시간을 품는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주최측이 장소를 바꾸려 하지 않아도, 같은 경로를 되짚으려는 시도를 변화한 도시가 용납하지 않았다. 2007년에는 원래 열아홉 곳 가운데 열 곳만 남아, 트레일러는 다섯 주를 차고에서 보내야 했다. 도시의 장소는 영원하지 않다. 땅에 대한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도시 공간은 조각의 지속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늘 그곳에 있을 것 같은 조각 작품도 설치된 장소의 맥락이 뒤틀리거나, 다시 설치될 물리적·제도적 영토가 사라질 수 있다. 여기서 질문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장소가 작품의 조건이라면, 그 장소가 어떤 시간들을 지나 지금의 조건이 되었는지 물어야 한다.


레베카 호른의 《엇갈리는 협주곡》(1987/97)은 이 물음에 대한 우리의 고민을 한층 더 진전시킨다. 이 작품은 뮌스터 츠빙거(Zwinger) 폐허 전체를 무대로 펼쳐진다. 츠빙거는 16세기 초 성곽 방어시설로 지어진 뒤, 18세기에는 감옥으로 쓰였다. 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게슈타포의 처형장으로 쓰였고, 폭격으로 폐허가 된 뒤 40년 넘게 방치되었다. 호른은 이 장소의 이력을 그대로 작업의 재료로 조직했다. 추모를 뜻하는 붉은 유리컵 초 40개가 창 없는 옛 감방의 좁은 벽 틈마다 놓여 있고, 서로 다른 높이의 벽면에는 42개의 기계식 망치가 끊임없이 두드리는 소리를 낸다. 여기에 서로 닿을 때마다 불꽃을 일으키는 두 개의 움직이는 강철 팔과 두 개의 쇠막대가 지탱하는 거위 알 하나가 더해진다. 반면 밝지만 벽으로 둘러싸인 중 정에는 비계 구조물에 매달린 유리 깔때기가 있어 20초마다 물방울 하나가 바닥 수조로 떨어지고, 그 파문이 원을 그리며 퍼졌다가 가라앉는다. 즉 이 작품은 어둡고 폐쇄된 실내의 타격음이라는 강박적 리듬과, 열린 중정의 완만한 물방울 낙하라는 두 개의 대조적인 박자를 병치함으로써, 제목 그대로 서로 엇갈려 진 행되는 협주곡을 폐허 위에 새긴다. 


호른은 1987년 뮌스터 조각프로젝트에서 작품을 처음 설치했고, 1989년 뮌스터시가 이를 구입했다. 작품이 영구 설치로 공개된 것은 츠빙거 폐허의 복원과 안전 보강을 거친 뒤, 1997년 뮌스터 조각프로젝트가 열리기 직전이었다. 작품의 공식 연도 표기인 ‘1987/97’은 최초 실현과 영구 설치 사이에 놓인 장소의 변화를 함께 가리킨다. 이 과정은 작품과 무관한 뒷이야기가 아니다. 츠빙거가 복원되고 보강되는 동안 설치도 1987년의 상태 그대로 재현되지 않았고, 달라진 공간의 조건에 맞게 조정되었다. 작품은 장소의 과거를 설명문처럼 전달하지도,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하나의 답으로 정하지도 않는다. 대신 지금의 츠빙거가 서로 다른 용도와 사건, 폐쇄와 복원을 거쳐 이루어진 장소라는 사실을 작품의 현재 안에 남겨 둔다.

 

호른의 작업은 앞선 두 사례가 던진 질문을 시간의 문제로 옮겨 놓는다. 올덴버그의 구가 물체와 몸, 호숫가 풍경의 비례를 바꾸고, 애셔의 캐러밴이 이동 경로와 주차 지점을 작품의 조건으로 드러냈다면, 호른의 작품에서 츠빙거 폐허의 변화는 작품의 설치 방식을 바꾸는 조건이 된다. 장소는 무엇을 어떻게 설치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고, 작품이 현재의 모습에 이르는 과정에 개입한다. 조각을 따라가던 시선은 이 지점에서 물체와 장소를 넘어, 지금의 경관을 이뤄온 시간성으로 옮겨 간다. 호른의 작품은 관람자가 느낄 감정이나 떠올릴 기억을 단선적으로 구성하지는 않는다. 그의 조각은 다양한 시간이 맞물린 장소에서 앞선 시간의 자국이 남아 있음을 알아차리게 한다. 처형장이었던 감방에 켜진 초는 이 장소의 기억이 누구의 것인지, 무엇이 공적으로 기억되고 무엇이 묻히는지를 묻는다.

 


아아제 호숫가에 놓인 세 개의 구, 도시의 주소를 옮겨 다닌 캐러밴, 츠빙거의 어둠과 빛 속에서 서로 다른 박자를 만드는 장치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도시에 놓여 있다. 하나는 익숙한 풍경의 비례를 흔들고, 다른 하나는 작품으로 살아나는 경로와 위치를 도시 변동의 역사 위에서 읽게 하며, 나머지 하나는 한 장소에 쌓인 시간의 지층을 소리와 움직임으로 펼쳐 놓는다. 우리가 이 세 작품을 한데 놓고 살펴보는 것은 공공조각 성패의 조건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사물 하나에 머문 시선이 몸과 장소를 거쳐 시간과 관계로 넓어지는 서로 다른 순간들, 거기에 놓인 조각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함이다. 
도시가 조각을 품는다는 말은 작품에 터를 내어 주고 그 곁을 꾸민다는 것이 아니다. 빛과 날씨, 사람들의 동선, 변화하는 물리적·문화적 경관의 시간성은 우리가 경험하는 작품의 장면을 바꾼다. 거꾸로 조각은 도시의 숨겨진 이면을 드러낸다. 공적 공간을 열고 닫는 물리적·제도적 장벽, 도시 공간에 묻혀 있는 기억의 지층을 불러낸다. 그렇게 조각은 도시의 조건과 공적인 것의 잠재력을 드러낸다. 
창원에서 만나는 조각 앞에서도 시작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모양이 좋아 걸음을 늦추고, 가까이 다가가 고, 지나친 뒤 한 번 돌아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다만 그 눈길을 조금 더 오래 붙들어 보면, 그 물체가 내 몸의 감각을 어떻게 바꾸는지, 왜 이곳에 놓였는지, 이곳에 이르는 길은 무엇을 허용하고 막는지, 이 장소가 지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를 묻게 된다. 조각을 좋아하는 마음은 이런 질문에 앞선 미숙한 감상이 아니다. 도시와 관계 맺는 방식은 바로 그 마음이 사물 너머의 장소와 시간으로 이어질 때 달라진다.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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