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행] 위대한 극장은 위대한 관객이 만든다.
스칼라 극장이 보여주는 살아 있는 관객의 힘
2006년 필자가 이탈리아로 유학 갔을 때, 세계 오페라계는 믿기 어려운 장면을 목격했다.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가 공연되던 중이었다. 세계적인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는 주인공 라다메스의 첫 아리아 청아한 아이다(Celeste Aida)를 마친 뒤 객석 일부에서 쏟아지는 야유를 들었다. 잠시 무대에 멈춰 선 그는 결국 공연을 이어가지 못한 채 무대를 떠났다. 뒤에서 대기하던 대역 테너 안토넬로 팔롬비는 청바지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남은 공연을 이어갔다. 세계 정상급 성악가가 공연 도중 무대를 떠난 사건은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학교에서 교수님과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는데 (물론 그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의외로 이탈 리아 사람들의 반응은 담담했다.
"스칼라 극장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밀라노 스칼라는 모든 성악가가 꿈꾸는 무대다. 동시에 가장 두려운 무대이기도 하다. 스칼라에서 성공하면 세계 최고의 성악가라는 명성을 얻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그것 또한 오랫동안 기록으로 남는다. 세계 최고의 영광과 가장 냉정한 평가가 공존하는 곳, 그것이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스칼라 극장이다.
지금 극장이 있는 자리는 원래 산타 마리아 델라 스칼라(Santa Maria della Scala) 성당이 있던 곳이다. 이 성당은 14세기(1381년 착공) 밀라노의 영주였던 베르나보 비스콘티(Bernabò Visconti)의 아내, 베아트리체 레지나 델라 스칼라(Beatrice Regina della Scala)의 명으로 지어졌다. 자연스럽게 성당의 이름은 그녀의 이름인 '델라 스칼라'를 따서 지어졌고 훗날 성당이 허물어진 자리에 극장이 들어서면서 극장 이름 역시 '라 스칼라(La Scala)'가 되었다. (흔히 생각하는 '계단(Scala)'이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1778년 문을 연 스칼라 극장은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명으로 건립되었다. 기존의 레지오 두칼레 극장(Teatro Regio ducale)이 화재로 소실되자 산타 마리아 델라 스칼라 성당이 있던 자리에 새로운 극장을 세웠고, 성당의 이름을 따 '테아트로 알라 스칼라(Teatro alla scala)'라 부르게 되었다.
2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로시니와 벨리니, 도니체티, 베르디의 작품들이 이곳에서 초연되거나 새로운 생명을 얻었고, 세계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스칼라 극장을 세계 최고의 오페라 극장으로 성장시켰다.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 프랑코 코렐리,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거장들이 이 무대를 거쳐 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스칼라의 위대함은 그 거장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스칼라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객석이었다. 극장의 가장 높은 곳에는 '로지오네(Loggione)'라 불리는 천장석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로지오니스티(Loggionisti)'라는 특별한 관객들이 자리한다.
이들은 단순한 오페라 애호가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며 공연을 관람하고, 악보를 연구하며, 지휘자의 해석과 성악가의 프레이징, 발음, 호흡까지 토론하는 사람들이다. 젊은 성악가들은 그들의 박수를 꿈꾸 고, 세계적인 거장들조차 천장석의 반응을 의식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을 아무도 '극성 관객'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스칼라의 전통을 함께 만들어 온 문화 공동체로 존중한다. 'Amici del Loggione'와 같은 모임에서는 공연 감상에 그치지 않고 강연과 토론을 이어가며, 공연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때로는 극장의 운영과 예술적 방향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낸다. 공연이 끝난 뒤 이어지는 비평과 토론은 오늘날 온라인 커뮤니티까지 이어지며 스칼라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그들의 날카로운 비판은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스칼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엄격하다. 훌륭한 공연에는 누구보다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내지만, 그렇지 못한 공연에는 냉정한 평가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사랑하는 극장의 수준을 지켜야 한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에는 이런 문화가 스칼라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전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생활하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로마에 살던 시절, 종종 로마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을 보곤 했다. 이탈리아의 오페라는 우리나라보다 막간 인터미션 (Intermission 휴식 시간)이 긴 편이다. 그 시간이 되면 극장 바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거나 샴페인 한 잔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 방금 본 공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연출은 신선했지만, 작품의 분위기와는 조금 달랐어."
"주인공의 고음은 훌륭했지만 2막에서는 다소 힘이 빠졌던 것 같아."
"오늘 지휘자는 템포를 조금 더 밀어붙였으면 좋았을 텐데."
놀라운 것은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음악 전공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직장인도, 학생도, 노부부도 마치 오랜 평론가처럼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공연은 막이 내리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대화 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테아트로 마시모(Teatro Massimo,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오페라 극장이다)에서 오페라를 관람했을 때였다. 박스석에서 함께 공연을 보던 이탈리아 노부부는 막이 오르자 자연스럽게 무대와 함께 작은 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명한 아리아 몇 곡만 따라 부르는 줄 알았다. 하지만 공연이 끝날 때까지 그들은 거의 모든 가사를 알고 있었다. 악보도 없고 망설임도 없었다. 평생 수없이 반복해서 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같은 방에서 관람하던 우리 부부에게 여러 번 미안하 다면서 노래를 멈추다가 또 이어가곤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들에게 오페라는 특별한 날에만 찾는 고급 예술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 살아온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그제야 스칼라 극장의 로지오니스티라는 존재가 조금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어릴 적 부모의 손을 잡고 극장을 찾고, 공연이 끝난 뒤 가족과 음악을 이야기하며, 좋아하는 성악가의 성장을 함께 지켜보고, 자기 생각을 나누는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한 시민들이었다. 로지오니스티는 스칼라가 만든 문화가 아니라, 이탈리아 시민들이 오랜 시간 함께 만들어 온 오페라 문화가 낳은 결과였다.
우리는 클래식 음악의 발전을 이야기할 때 종종 정부의 지원과 세계적인 연주자 양성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그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문화는 공연장을 찾아오는 시민이 만들고, 공연이 끝난 뒤 감상을 나누는 대화가 만들며, 신인 예술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응원하는 공동체가 만든다.
정부는 공연장을 세울 수 있다. 오케스트라를 지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연장을 문화로 만드는 것은 시민이다. 오래전 한 지역에서 인상적인 현수막 하나를 본 적이 있다.
우리 지역 성악가들이 조수미가 될 때까지.
짧은 문장이었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예전에는 단순한 응원의 문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문장이 조금 다르게 읽힌다. 소프라노 조수미 선생님은 혼자 탄생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재능과 노력은 물론 가장 중요했지만, 이름이 알려지기 전부터 공연장을 찾아가 박수를 보내고, 성장을 지켜보며 응원했던 수많은 관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역의 젊은 성악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세계적인 예술가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얼마나 그들의 공연을 찾아가고 있는가. 얼마나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공연이 끝난 뒤 음악을 이야기하며, 다음 공연을 기다리고 있는가.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공연이 끝난 뒤 카페에서 "오늘 2막의 아리아는 정말 좋았어."라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신인 성악가의 이름을 서로 이야기하며 함께 응원하는 시민 공동체가 생겨난다면, 우리는 또 한 명의 소프라노 조수미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스칼라 극장이 세계 최고의 극장이 된 것은 세계 최고의 성악가들만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성장을 함께 기뻐하고, 때로는 냉정하게 비평하며, 공연장을 자기 삶의 일부로 만들어 온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극장은 위대한 예술가가 만든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가는, 결국 위대한 관객 속에서 자란다.
언젠가 우리 공연장에도 로지오니스티 같은 시민 공동체가 생겨나기를 바란다. 공연이 끝난 뒤 박수만 남는 것이 아니라 음악 이야기가 이어지고, 신인 성악가의 이름을 함께 기억하며 성장하는 기쁨을 나누는 문화 말이다. 그날이 온다면 우리는 또 한 명의 조수미를 만나는 것을 넘어, 클래식이 시민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나라를 만 나게 될 것이다.
글. 김 성 민 (국립창원대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