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NOTE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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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다] 현대 한국 건축가들이 추구하는 건축미학

간혹 흥미로운 건물로 들어갈 때가 있다. 창원시 옛 마산 지역에 사는 필자도 유독 눈에 띄는 건축을 만난 적이 있다. 주변 단독주택 사이 원래 집(건축가 김효일, 이하 이름만)이었던 식당 브릭루즈는 붉은 벽돌이 맞물린 공간들 조직과 분위기가 돋보인다. 마산자유무역지대 후면 팔용산으로 들어간 학교에 들어선 창신교회(허정도)에서도 기하학적이면서 높은 층고에 천장을 보게 된다. 경사진 언덕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바닷가 풍경이 멋지게 펼쳐진 카페 어센드(김현수)도 볼 수 있다. 이 3개 건물은 서로 다르게 건축미학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래서 같은 유형의 다른 건물이 사용에만 머물 때, 감각과 행위에서 더 미적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이제 질문을 구체화 할 때가 되었다. 현대 한국 건축가들이 추구하는 건축미학은 무엇일까? 건축상(젊은건축가상 등 협회나 지자체 건축상 등)으로 일부가 드러나기는 하지만, 수많은 건축가 각자 추구하는 건축 전선의 일부만 드러날 뿐이다.

 

최근 건축단체장들이 제시한 건축 정의가 눈에 띈다. “건축은 예술이다”, “건축은 모두의 예술: 모두가 건축이고 모두가 건축가이다.” 자세히 보면, 첫 번째 명제는 조건이 생략됐다. ‘어떤’ 건축은 예술이라거나, 건축은 ‘어떤 경우일 때’ 예술이라고 해야 보다 명확할 것이다. 혹시라도, “‘모든’ 건축이 예술이다”라고 해석하면, 세상 건축 중 예술이 아닌 게 없기에 건축을 예술로 정의할 필요가 없거나 열심히 만들 필요가 없다. 즉, 건축은 예술일 수 있으나 그 조건은 무엇인지를 봐야 할 것이다. 즉, ‘어떤’ 건축은 예술이다. 두 번째 명제는 마치 한스 홀라인(H. Hollein)의 『모두 건축이다 Alles ist Architektur』(1968)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홀라인 등이 당시 통상적 건축의 범위를 넘어서려는 선언에 가까운 것이라면, “건축은 모두의 예술”이라는 명제는 ‘건축’은 모든 사람이 일상생활에 가까이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있는 예술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명제 “모두가 건축이고 모두가 건축가이다”는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같지만, ‘수 있다’을 추가하면 명확해진다. 모두(모든 사물)가 건축이 ‘될 수 있으며’, 모두(모든 사람)가 건축가가 ‘될 수 있다’. 둘의 내용을 종합하면, ‘어떤’ 건축은 모두의 건축예술이 ‘될 수 있다.’ 이 글은 현대 한국 건축가들이 어떻게 건축을 예술로 만들려고 하는 지를 탐색하려는 게 목적이다.

 

아돌프 로스(A. Loos)는 120여년 전 현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지금은 낯선 방식으로 건축에서 예술과 비예술을 구분했다(『건축Architektur』, 1910). 그에게 무덤과 기념비는 예술이고 집은 예술이 아니다. 외부에 공공적으로 알리는 파사드를 지닌 공공건축과 공간 이용이 없는 무덤을 예술로 봤다면, 사적으로 집 내부 생활에만 집중하는 공간은 예술과 상관없다. 과거,  예술은 공적 영역을 주도하던 귀족이나 지식인이 이끌었다. 즉, 예禮와 에티켓Etiquette으로 행위를 제한하며 삶의 가치를 규정했으며, 이와 결합된 감각을 가치(서양에서 교양인의 미적기준Taste/Goût나 동아시아 문인의 시·서·화)있는 예술로 규정했다. 건축적으로 과거의 유럽 대저택이나 조선 상류주택은 공적 성격이 강한 공공재여서 파사드나 장식을 두고서 살롱이나 사랑채를 특별하게 만들고 예술을 향유했다. 로스가 살던 시대는 공적영역이 희미해지고, 자본주의 개인주의 시대가 등장했다. 그래서 로스는 자신의 정의에 따르면 예술이 아닌 집을 지었지만, 현재 우리는 그가 설계한 집들을 예술로 본다. 사회가 바뀐 것이다. 로스의 시대를 거쳐 우리는 사적인 집이 예술이 되는 사회로 진입한 것이다. 

 

 

현재 건축의 중심은 사적 영역이다. 우리가 보는 공공 공간(미술관, 도서관, 커뮤니티센터 등)이 개인의 집합이지 공적 영역으로 기능하지는 못한다. 어느 때보다 우리는 개개인으로 살게 됐으며, 개개인의 감각과 행위가, 보편 혹은 집단적 가치보다 중요해졌다. 실제, 우리는 양덕성당, 경남문화예술회관, 최근 한국민주주의전당 등 건축미를 드러낸 종교 혹은 공공 건물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들이 건축미를 실제 경험하는 곳은 카페 등 상업건물로 옮겨갔다. 마치 고딕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백화점 천창으로 옮겨간 것처럼. 점차 한국사회에서 관이 주도하는 공공시설에서 건축미를 찾기가 점점 어렵다. 실제, 공공건물은 공적 영역의 가치가 사라지니 사람을 모으는 데 집중하는 프로그램이 기능만 남거나 사람이 잘 사용하도록 만든 것이 카페처럼 꾸미는 곳이 많다.

 

언젠가 해외 건축 전시를 준비하면서, 하루 오전과 오후에 매우 다른, 심지어 반대되는 성향의 건축가를 만난 적이 있다. 오전 건축가는 건축을 통한 감각적 성취를 중요시하는 건축가로, 건축을 매우 세련되게 잘 만들었다. 세련된 모습 뒤에는 세밀한 디테일과 미감을 드러내려는 노력이 가득하다. 그런데 그런 공간은 특별한 상류층 소수의 예민한 감각을 가진 의뢰인을 대상으로 해서, 우리가 쉽게 보기는 힘들다. 오후에 만난 건축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디테일을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다수가 사용하면서 이동과 흐름, 관계 맺기를 조직하는 공간으로서 건축을 규정한다. 즉, 활발한 인간 행동을 담는 그릇에 해당한다. 서로 다른 두 건축가의 입장(감각과 행위)은 개인적이지만, 그 가치는 이미 우리 사회에 내재해 있다. 이를 좀 더 확장해 본다면,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건축적 가치가 건축계 내에 있으며 건축가는 그중 어떤 것을 선택하고 조합하여 자신만의 길, 자신만의 전선을 세운다. 아주 특별한 건축가(르코르뷔지에, 미스, 생존 건축가로는 렘 콜하스 등)는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 다른 건축가가 따르게 한다. 즉, 현재 한국건축가들은 건축 가치가 펼쳐진 대지, 즉 가치 지형 위에 자리 잡고 자신 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영화 『관상』이 잘 보여주듯이, 파도(건축가와 작품)는 바람(가치 지형)을 볼 때 이해된다.

 

현재 한국 건축가들이 추구하는 미학 지형을 살피기 위해 앞서 언급한 두 건축가를 다시 소환해보자. 두 사람 모두 한국 건축 전환기를 상징한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로 해외 건축유학을 본격적으로 간 첫 세대이며, 각각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유학했다. 각 나라의 건축 흐름이 건축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 해외 유학 건축가들은 한국 사회에 매우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줬다. 당시까지 토목과 구분되지 않는 개발 시대 풍토에 서구적 가치로 무장하며 작가로 인식한 건축가가 등장한 것이다. 물론, 간접적으로 서구 건축 흐름이 소개되거나 김수근과 김중업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모더니즘 건축이 한반도에 실험적 시도도 있었다. 뒤로 물러나 있었던 미적 관점도 한국성에 묶여 개인(혹은 건축사무소)적 성취로 한정되거나 기술적 한계와 사투를 벌이면서 유지되었다.

 

두 건축가가 유학하던 시점에 활동했던 4.3그룹이 지닌 역할은 독특하다. 1990년에 시작해서 약 4-5년간 이어진 14인의 모임은 특별한 결과를 낸 것은 아니지만, 건축 가치에 대한 문제 의식을 확산시켰다. 이는 곧 교육으로 확산했다. 서울건축학교와 여러 건축대학원 그리고 5년제 인증교육의 도입은 건축 가치를 교육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며 체질 개선이 된다. 그 시점에 서구에서 건축 유학을 하고 온 건축가들이 속속 도착했고 실무를 하거나 교육계로 유입되었다. 필자는 이들에게 건축을 배웠고 2010년 전후로 유학했다. 필자가 재직하는 경남대 건축학부 교수진에서도 이런 모습이 잘 보인다. 학생들에게 말하지만, 한국 건축계도 세계적 문제의식을 동시에 공유하고 있다. 비평가로도 활동하는 필자가 여러 건축가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그들은 외국 건축가와 혼동될 정도로 국제적이며 건축적 이해가 깊다. 여전히 우리 안에 쌓은 문제와 한계가 많기는 하지만, 이제 한국 건축가의 가치 지형 이 세계 건축계의 축소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현재 한국 건축 지형과 건축가를 통해 건축을 살펴보자.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복잡하고 다양하다. 다 다룰 수 없으며, 불가능하다. 여기서 스틱차트(Stick Chart)처럼 다룰 것이다. 넓은 바다에서 항해하는 데, 필요한 길을 막대기로 표시한 항해지도다. 바다 속 지형을 다 파악할 수 없기에, 수면으로 올라온 섬 중에 일부를 골라 길을 연결한다. 바다처럼 넓은 한국 건축지형을 살펴보는 데, 그 안은 매우 복잡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지형 간의 관계가 많다. 바닷속의 복잡함은 뒤로 하고 수면 위에 올라온 섬들을 따라 연결해서 몇 개의 흐름으로 항해해 볼 것이다. 당연히 수많은 다른 길이 있고, 중요한 섬을 지나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한 섬이 여러 바닷길로 교차로이듯이, 하나의 건축 및 건축가는 복잡하고 다층적 층의 집적이다. 최대한 간단한 길로 중복되지 않게 몇 개의 길로만 항해를 해볼 것이다.

 

첫 번째는 한국성과 그 다양한 확장(지역성, 한옥계승, 랜드스케이프, 버내큘러)이다. 오래된 용어이고, 기본 전제는 오랜기간 한국이 만들어 온 공간과 조형, 그리고 일상 습성에서 한국적 미학이 도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찬반은 뿌리 깊은 것으로 문화 전반(특히 문학에서 민족주의와 근대주의처럼)에 걸쳐 있는 논쟁이다. 그 건축적 시도는 앞선 연재에서 다뤘듯이 앞서 19세기 서구 역사주의에 영향받은 일제에 의한 한옥식 기차역, 북한의 조선식 건축 등이 형태적 유사성을 추구했다. 그런데 김수근이 국립부여박물관(1967)로 왜색 시비를 겪은 이후 한국성을 형태보다는 무형의 요소, 특히 공간에서 찾았으며 그 대답은 공간사옥이다. 김수근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인물들이 다수 포진했던 4.3그룹에서 한국성을 공간에서 찾고자 한 것이 놀랍지 않다.

 

그런데 다들 공간으로 해석하고자 해서, ‘마당/비움/빈자의 미학/허’ 등은 서구 ‘공간’에 대응하는 개념을 도출한 것으로, 《도덕경》 11장의 무지이위용(無之以爲用)이 많이 소환되었다. 빈공간(無)의 쓸모를 표현한 것으로 19세기 말 공간(Raum)의 개념과 유사하다. 수졸당과 수백당(승효상), 몽학재(우경국), 마당깊은 집(민현식), 김옥길 기념관(김인철) 등이 이들이 찾은 초기 결과물들이다. 이 당시 전통건축(대표적으로 종묘와 부석사) 답사가 붐이었고, 건축가들도 너도나도 전통 건축을 공부했다. 지나간 일이지만, 한 때 서구의 해체주의 건축을 추종하거나, 서구철학을 건축의 근거로 삼으려던 건축가들이 하나둘씩 모두 한국 전통 가치에 심취했다. 

 

그런데 결과물은 심오한 공부량에 비해 가벼웠다. 너무 추상적인 개념이라 한국적 고유함보다는 억지스러운 경우가 많다. 여전히 이 개념을 건축적으로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건축가들이 있지만, 아직은 이에 대한 건축적 결과가 설득력이 있지 않다.

 

 

최근 공간을 벗어나 한국성을 다르게 해석하는 방식 매우 흥미롭다. 한옥의 구체적인 요소를 찾거나 도출해서 현대화하는 것이다. 원오원 최욱은 감각으로 파악하는 재료(흙과 나무)와 공간 분위기를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또한 관찰을 통해 파악한 것, 예를 들어 지붕과 바닥을 제외하고 트여 개방된 누정에서 사람의 움직임 장면을 포착하여 건축으로 확장하면서 수평적 장소를 만드는 방식이 탁월하다. 특히, 흙을 사용해 세련된 공간을 연출한 사유의 방(국립중앙박물관)은 이런 모습이 잘 드러나는데, 수평적 공간은 깊이를 제거해 수직으로 세워진 2개의 작품이 두드러진다. 몇 해 전 작고한 이일훈은 4.3 그룹의 구성원이지만 공간 대신 채나눔(한옥에서 안채, 사랑채, 행랑채 등 기능으로 건물이 구분된 방식)을 자신의 건축설계에 적용했다. 한 공간을 칸막이 쳐 안락(Comfort)한 한국 아파트 특성에 반하는 불편한 건축을 추구했다. 한국 전통 건축에서 행위적 요소를 발굴한 셈이다.

 

더 직접적인 한옥 추출은 재료와 구조다. 진주 빛의 루(김재경)는 한옥의 공포 구조를 확장 해석한 것이다. 바로 남강을 따라 동쪽에 인접한 조선시대 촉석루를 동일하게 참조했다는 점에서, 경남문화예술회관(김중업)과 비교 될 수밖에 없다. 경남문화예술회관은 기둥 형태가 바로 한옥을 연상한다는 점에서 서울의 세종문화회관과 맥을 같이하지만 네 방향으로 지붕을 지지해 공포를 적극 해석했으나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반면, 진주 빛의 루는 공포의 목구조적 계승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전통 공포보다 목구조의 일반적인 특징에 더 가까워서, 공포 형태나 구조 속성과는 거리가 있다. 같은 건축가의 경주 대추밭 한의원도 이러한 질문(한옥의 공포와 목구조)을 더욱 확장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전통 목구조를 해석한 구조와 동시에 명쾌한 중목구조를 사용해 강렬한 인상을 준다. 다만, 이웃 중국과 일본 건축가(왕슈나 쿠마 겐고 등)가 과감하게 전통 목구조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료 실험하는 것에 비해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성은 지역성으로 치환되기도 한다. 한국성이라는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거부감이 지역적 특성에 맞는 건축이라 부담이 적다. 이는 모더니즘의 보편 건축에 대한 반발로 하이데거 철학을 도입한 장소성 개념이나, 현대 자본과 미디어가 만드는 이미지 건축을 거부하는 방안으로 부각된 비판적 지역주의(케니스 프램튼)와 공명하다. 이의 건축적 변화를 잘 보여주는 것이 건축가 승효상의 궤적이다. 우선 수졸당인데, 도시화된 서울에서 도시한옥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건축이다. 한국적 특성을 지역적이며 오래된 것의 흔적에서 찾고자 하는 노력은 과거 건축의 흔적, 나아가 땅의 흔적 찾기로 확장된다. 책 『지문(Landscript)』이 그런 의미(땅에 쓰인 흔적, 혹은 터무늬)를 담고 있다. 현대 건축가에게 단순히 대지를 해석하는 것 이상, 맥락을 파악하는 것을 넘어 역사적 가치와 부합하는지에 대한 해석이 뒤에 따른다. 그래서 지역성은 한국성 범위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으며, 건축보다 역사 담론에 묶이는 경우도 있다(진주 호국마루가 그런 사례다).

 

비판적 지역주의가 남긴 흐름 중 하나는 대지와 관계를 직접 연결하는 랜드스케이프 건축(프램튼은 메가폼이라 불렀다)이다. 건축은 대지와 주변에 기본적으로 폭력적이다. 대지를 자르고 눌러 그 위에 건물을 지으며, 주변을 가로막는다. 수평적 대지에 반해 수직으로 올라가 주변을 지배하고 있다. 가장 좋은 것은 짓지 않거나 최소화하는 것, 지어야 한다면 대지와 결합하는 방식이다. 거제도의 지평집(조병수)은 지평선 아래로 스며들어 바다 수평선에 접한다. 이 정도는 아닐지라도 현대 건축에서 건축을 전경이 아니라 대지와 같이 배경으로 다루려는 건축가들의 태도를 파악할 수 있다. 가까운 예로는 경남대 창조관인데, 도로면에 접한 지붕이 정원으로 조직되어 건물 전체가 지하에 있다. 이런 형태로 한국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건축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다. 매우 넓은 공간이 지하에서 진출입이 이뤄지지만 공간 조직의 짜임새가 전혀 혼란스럽지 않으면서 내부 곳곳에 유입된 크고 작은 빛기둥과 선큰 덕분에 지하라기 보다 은은한 공간에 들어온 듯하다. 특히 산이 많은 우리나라 지형과, 자연을 정원 삼는 전통적 자연관(지난 연재에 참고)과 결합해 건축가들의 관심사 중 하나다.

 

한편, 한반도 근대화 과정에서 세워진 근대 버내큘러 건축은 어떠한가?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것은 아니지만 토착적 감수성이 콘크리트 재료로 구현된 것이지 않은가. 보편적 모더니즘이 지역(한국)적으로 변환된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모더니즘 건축의 한국적 감성을 개별건축에서 볼 수 있다. 도시 한옥에 대응하면서 양식주택의 계보를 지닌 70-80년대 개발시대 양옥인 불란서 주택(옛 마산과 창원 지역에 많다)의 다양한 모습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작품이 많지는 않지만, 건축가 임윤택은 이를 아카이빙을 하며 현대 한국인의 감각적 형태를 찾아 건축 디자인 요소로 재정립하고 있다. 최근 왕성하게 작품을 내는 정이삭(2025년 젊은 건축가상 수상자)은 1971년 양옥을 리모델링한 N작가주택에서 과거의 흔적을 되가져왔다. 마치 과거에 잘 작동하던 건축과 장치들이 작동하던 시대를 존중하면서 현재까지 생명을 연장한 모습이다. 진보의 바람에 천천히 뒤로 물러나면서 남겨진 폐허를 보면서 불안한, 파울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가 넘어지지 않게 과거와 연결해 주는 밧줄처럼 보인다.

 

 

두 번째는 감각과 거리 측면으로 볼 수 있다. 이 둘은 현대사회의 등장과 함께 볼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사람 간 거리를 설명한 홀(E. Hall)의 분석(관계에 따라 발생하는 심리적 거리)을 과거에 볼 때는 그런가 했는데, 현대 한국인에게 잘 맞는다. 그리고 그만큼 타인과 거리를 둔 개인의 감각이 중요하다. 카페가 바로 그런 공간이다. 다수 타인과 함께 있지만 개인 감각과 행위가 보장되는 사적 공간이다. 그래서 과거 살롱이나 사랑채와 유사하지만 다르다. 도시화 현상으로 대로변에 만들어진 유럽의 카페와 달리 한국의 카페 현상은 한국 아파트 현상과 비교할 만하다. 마치 거의 동일한 한국아파트를 벗어나 비일상적 이색 경험의 장소를 찾아다닌다. 그래서 유럽의 카페는 익숙하게 자주 가는 곳이라면, 한국은 새로운 카페를 찾아 이동한다. 건축은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독특함과 감각적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그래서 펜션도 같은 맥락이다. 아파트에서 경험할 수 없는 단독주택을 카페처럼 경험을 대신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카페와 펜션은 상업적 성공으로 인해 오늘날 한국 건축의 중심에 새로 올라섰다.

 

특이한 현상은 한국의 카페가 노출콘크리트로 많이 지어졌다는 점과 풍경(볼거리)을 잘 조직한다는 점이다. 사실, 1950년대 이후 노출콘크리트 건축이 브루탈리즘으로 지칭되던 건축 흐름이 줄어든 시점에, 한국은 오히려 대중이 선호하는 현상이다. 영국 찰스 국왕이 예전에 “괴물 같은 종기(monstrous carbuncle)”라거나 “원자력 발전소”보다 못한 건축으로 표현했던 건물이 한국에서 가고 싶은 공간이 되었다. 왜 그럴까? 우주선 같은 형태는 우리를 비일상적 장소로 안내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낯선 재료는 곧 배경으로 물러나고 공간 분위기와 풍경만 살아난다. 바라볼 풍경이 없거나 분위기 없는 자리는 모두 제거한다. 이렇게 만들어 내는 것은 개인 혹은 동반자와 타인과의 거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타인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거나 마주치더라도 거리가 있어 사적 공간을 침해하지 않는다. 약간의 거리 그리고 시선을 둘 수 있는 장면이 만드는 보호막 안에 들어간다. 그 안에서 건축공간과 분위기, 커피 향과 풍경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감각과 행위를 만드는 건축 방식은 다양하다. 두 사례만 들어 보자. 충남 아산에 있는 아레피(Aleffe)는 노출콘크리트를 오래전부터 아주 능숙하게 다루는 건축가 곽희수의 작품이다. 출입쪽 외관에서 보이는 매끈하면서 거대한 박스가 공중에 떠 있는 조각 형태와 반대쪽 저수지를 향해 펼쳐진 슬래브들이 부드럽게 접혀있는 모습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중심부를 비워 방문객이 이동하면서 다른 사람과 겹치지 않고 자신만의 자리를 잡으며 서로 다른 장면을 가지도록 구성되어 있다. 또한 프라이버시를 가지고 싶으나 사람 사이에 있고자 하는 현대 도시인들의 욕망을 공간적으로 조직했다. 반면, 창원 갱고반지하는 굽이치는 길을 따라 산을 넘어 대상지에 들어오면, 풍경이 펼쳐진다. 입구는 옥상의 최상부에서 거꾸로 내려가는데, 그 길은 콘크리트 벽에 고측창이 내려오면서 분위기를 만들면서, 외부와 격리된 전이 공간을 만든다. 그 중간에 온실은 바다 풍경을 잠시 잊게 하다가 자리에 도착하면 계단처럼 칸칸이 내려간 자리에서 바다 풍경을 보게 된다. 사방으로 펼쳐지는 아레피와 달리 북서향 한 방향으로 집중되어 있다. 두 카페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내부에서 사방으로 수많은 시선을 만들거나 한 방향으로 집중하는 사람의 감각과 거리를 조절했다.

 

 

세 번째는 공동 공간과 행위 조직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의 건축적 대답에 관한 것이다. 현대 도시가 서로 모르는 개인들이 대규모로 모여 사는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다. 과거의 공동체적 삶은 아닐지라도 함께 사는 방식을 건축적으로 고민한다. 특히 한국사회는 급격히 변화하는 과정에서 옆집이나 아파트 단지 밖 사람과 이웃 관계 없는 현상이 아파트에서 잘 나타난다. 감각적 미학 대신, 사람이 함께 사는 방식이 예술인 셈이다. 공동생활 조직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이일훈이다. 가가불이는 다세대 집집마다 서로 연결하는 1층 내부 필로티 공간의 연속을 상상했었다. 현실은 주차장으로 쓰이기에 의미가 없어졌지만, 유사한 개념이 그 전에 아시아선수촌 아파트에서 부분적으로 적용되었다.

 

공동생활을 담는 공동주택을 실현한 인물이자, 2024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일본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이 있다. 한국에 이미 여러 공동주택(판교 월든힐스와 강남 세곡동)이 있다. 다양한 생활방식을 조직하려는 건축가의 프로그램 접근이 건축으로 구체화 되었다. 특히 판교 월든힐스는 분양당시 논란(사생활 노출)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이웃관계가 잘 만들어졌다. 한국 건축가들로는 이민아의 강남브리즈힐아파트, 이은경의 만리동 예술인 협동조합형 공공주택 , 김태영·김현준의 은혜공동체 주택에서 이러한 방식을 적용하고자 하고 있다. 최근 고덕강일 공동주택 등 여러 건축가들의 노력이 실현되고 있고, LH가 이제는 단지를 벗어나는 도시공동주택을 추구하고 있다. 여러 시도에도 여전히 아파트가 집값으로 이해되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와 대비적으로 작은 실험도 있다. 소위 사회주택, 원도심에 오래된 낡은 주택 여러 채를 소규모 개발로 해결하는 것이다. 거대한 재개발이 아닌 이러한 문제해결은 거주자 입장을 고려한 방식은 한국사회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옛 마산의 완월달빛 사회적주택(박진석)이 대표적이다. 언제 지어졌는지 모를 쪽방촌과 연립주택으로 빗물이 새며, 화장실을 공동으로 이용하던 곳이었다. 이 노후주택을 공동 마당을 에워싼 공동주택으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제도적 한계를 해결하고 주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겪었다. 또한 도로 가에 카페와 임대주택을 통해 수익을 통해 동네 모임을 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경제구조도 조직했다. 낡은 지역이 점점 재개발이 사업성에 따라 매우 어렵게 성사되는 와중에 이런 작은 개발은 실효적인 대안으로 나타날 수 있다. 다만, 제도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어떻게 할지 조정하는 과정은 건축가에게 새로운 문제 해결사 역할을 부여한다.

 

조금만 시선을 돌려 과거로 돌아가 보자. 단지 아파트가 등장하기 전에 도시에서 살던 모습을 보면, 지금 우리가 찾고자 하는 공동주택의 단서가 있다. 1970-80년대 한국 지방 도시에서 이런 유형의 공동주택이 많이 만들어졌다. 공동 마당이 있거나, 함께 쓸 공간을 지닌 곳이 많다.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시장이나 상점이 아래층이 배치된 경우가 많았다. 필자는 마산 주변에서 이런 건물을 자주 만난다. 우리는 급속히 도시 속 개인으로 고립되어 살아가는 데, 앞 세대, 그리고 그 앞 세대와 너무 다른 방식의 생활. 그리고 지금 사라진 부분을 과거의 건축 흔적에서 찾는 것도 방법이다. 황두진은 무지개떡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며, 최상층 주거와 각각 다른 프로그램을 지닌 노스테라스가 그 예이다.

 

 

네 번째는 파사디즘과 아셈블라주다. 젊은 건축가들의 작품에서 잘 나타난다. 특히 파사드는 한국 전통건축과 거리가 먼 주제인데, 최근 해외 유학을 한 건축가나 유럽의 파사드를 한국적으로 해석하려는 건축가에게 나타난다. 한국 건축계에서 한동안 포스트모더니즘의 껍데기 정도로 취급받기도 했지만, 파사드는 사실 도시에서 사람들이 접하는 건축의 얼굴이자 도시 구성물이다. 특히 알도 로시(A. Rossi) 등 이탈리아 건축계가 현대 건축에서 공간의 독점성을 거부하고 반공간(Controspazio)을 외치며 도시를 참조한 파사드로 과거를 통해 현재로 봤다면, 현대 건축가인 올지아티(V. Olgiati)는 그들처럼 건축적 자율성(autonomy)을 추구하면서 내용상 비참조(Non-Referential)를 주장한다. 추상 기하학적인 형태인 파사드는 장식 요소는 없고 신전처럼(단 하나의 건축참조로 미틀라 신전을 제시한다) 전체가 하나의 덩어리로 만든다. 과거 파사드가 참조 내용(외부적 참조나 건축자체의 참조든지)을 담는다면, 올지아티는 추상회화같은 재료 물성(주로 콘크리트)을 드러내, 즉각적 파악이 어려운 표면에서 깊이를 만든다.

 

건축에서 파사드 혹은 외피는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건축가가 파사드에 특별히 가치를 두고 건축 작업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근대건축에서 워낙 공간을 강조하기도 했고, 한국성 논쟁에서 외형보다 내적 속성에 더 관심을 두었기에 한국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았다. 점차 파사드의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젊은 건축가들이 등장 하고 있다. 최근 작업으로 아파랏체의 작업인 차리숙소에서 파사드가 깊은 효과를 준다. 외부에서는 단일하게 보이지만, 가벼운 지붕을 제거하면 한 덩어리로 만든 파사드는 낯설다. 외부에서 보면 파사드는 무심하게 밀어내는 추상화다. 내부에서 펼쳐지는 자연풍경과 대리석 기둥 벽의 자연석 질감, 바닥 홈통 등의 장치 등을 압축하여, 마그리트(R. Magritte)의 그림 백지위임장처럼 전경과 배경의 구분 없이 바라보도록 한다. AOA건축의 단단집은 이와 다르게 내부를 압착해서 파사드로 밀어냈다. 좌우 대칭의 내부 공간 조직을 그대로 투사했으며, 그 재료는 부엌에 쓰인 붉은 타일을 전체적으로 강조점에 화강석 혹두기를 선택했다. 다가구주택(특히 부엌)의 오마주를 넘어 반복된 타일은 단색화 느낌이다. 차리숙소가 숨기기 성격이 강하다면, 단단집은 드러내기에 가깝다.

 

아셈블라주(assemblage)는 단일성과 반대로 이질 조합이다. 아셈블라주는 이질요소의 결합이며, 양태인 절충주의와 비교된다. 피라네시(G. B. Piranesi) 이래로 자주 등장한 절충주의는 특히 19세기 역사주의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질 양식, 이질 재료를 통합하여 하나의 일관된 형태에 녹여내는 것이다. 반면 아셈블라주는 충돌적인 결합이다. 이질 형태를 대립적 결합을 추구했던 후반기 르코르뷔지에는 롱샹성당으로 결과물을 도출했다면, 현대 사회의 프로그램적 이질성의 병치 현상에 관심을 가진 렘 콜하스는 건축과 도시에 적용했다.

 

사실, 한국사회가 급변했기에, 서로 다른 건축의 이질적 충돌을 흔히 만난다. 이를 자신의 건축으로 소화시킨 건축가는 김효영이다. 마치 재료적 형태적 이질 요소의 결합이 건축적 정체성으로 보일 정도이며, 때에 따라서 키치 효과가 난다. 경북 문경에서 했던 작업은 한옥지붕과 벽돌원통을 결합한 점촌기와올린집, 사각형 건축 상부에 드럼통 5개를 올린 듯한 형태의 문경복터진집처럼 이색적이다. 이와 달리 요압(YOAP)의 이질요소는 프로그램과 관련되며 외관으로도 명확히 확인된다. 소요재는 하부에 도로쪽 공공에 내어준 저층부를 담당하는 형태로 지하층 갤러리와 공방이 자리하고, 큐브형 건물의 주택(1층 스튜디오는 다시 외장재로 구분했다) 그리고 주택을 구분해주는 커다란 벽이 역할을 한다. 이들 사이 수직 연결은 빈 공간들이다. 창원에서 주로 활동하는 김태윤의 아뚜드스윗에서도 다양한 재료의 구분을 통해 공간 사용 방식을 나눴다. 렘 콜하스가 발견한 이질 프로그램의 결합이 건물 외피에서 드러나지 않는 방식이라면, 여기는 르코르뷔지에의 조형작품 Ozon처럼 눈에 보인다.

 

다섯 번째는 구조미와 텍토닉이다. 텍토닉은 건축가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관심사다. 건축가들이 말하는 텍토닉을 미학적으로 본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구조미, 다른 하나는 공간 만들기의 텍토닉이다. 사실, 20세기 공간 개념은 구조와 텍토닉 문제와 함께 등장했다. 이 둘의 관계맺기가 건축가들의 지속적인 주제였으나 우리는 주로 공간에 건축을 다루는 데 익숙했다. 현대건축가들에게 공간개념 자체보다는 텍토닉과 연계되어 보려는 흐름이 많으며, 이 글도 공간 대신 텍토닉에 초점을 맞춘다. 텍토닉을 계보적으로 보면, 로지에의 원시 오두막에서 짓기를 건축의 중심에 두기 시작한 이후, 하나는 19세기에 비올레르뒥의 이론을 거쳐 르코르뷔지에가 말하는 엔지니어 미학이며, 다른 하나는 뵈티허와 젬퍼의 텍토닉으로 구조 자체라기 보다는 공간을 만드는 방식으로서의 구축술이다. 

 

 

전자 구조의 흐름을 잘 드러내는 건축은 서울 더현대 백화점이 입주한 파크원이다. 로저스(R. Rogers)의 작품으로 더현대 백화점 내부는 대공간이 넓게 펼쳐져 놀라운데, 이를 가능하게 한 게 8개의 대형 크레인이 마치 텐트 활대처럼 작동해서 내부를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조의 흐름을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 붉은색(전통 단청색 오마주)으로 구조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말년의 이소자키 아라타(A. Isozaki)도 구조엔지니어 사사키(M. Sasaki)와 함께 시드라 나무(Sidra Tree)에서 영감을 받아 파격적인 실험을 했다. 후자 텍토닉을 계승한 건축가는 미스(Mies)부터 많지만, 지금 대표적인 건축가는 헤르초그 & 드 뫼롱 (Herzog & de Meuron)이다. 구조와 피복의 역할을 분절하고 결합하는 다양한 방식을, 리콜라창고부터 베이징 올림픽 스타디움을 거쳐 최근까지 잘 보여준다. 한편, 최근의 흐름은 구조와 외피의 구분보다는 이들 사이의 엮임, 나아가 그 구분을 없애는 건축이 등장한다. 후자는 오래전부터 프랭크 게리가 강조한 것으로 최근 이토 토요의 서펀타인 파빌리온이나 최근 디지털 재료를 통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건축가 김찬중은 이를 UHPC(초고성능콘크리트)로 실현하고 있다. 울릉도의 코스모스는 구조 체와 외피가 통합(monocoque 방식)하여 매우 조형적인 형태로 세워졌다.

 

우리나라에서도 텍토닉과 구조미를 드러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러한 계보가 사실 한국에서는 엄격히 나타나지는 않고 혼성적이며, 최근에는 특히 한옥의 목구조 해석에서 나타나고 있다. 가장 명확하게 강조한 건축가로 꼽히는 건축가는 미스의 제자 김종성일 듯하다. 서울힐튼호텔(1983), 올림픽역도경기장(1986), SK서린빌딩(1999) 등이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그 이후 어반하이브(김인철)는 구조와 건축미가 결합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구조를 외피로 만든 작품이다. 구조 내력벽을 내부에 감춘 것이 아니라 외부 벽으로 그리고 규칙적으로 구멍이 송송나 있어, 강남대로에서 눈에 띄는 형태이다. 창원에서는 조금 앞서 창원시청 옆 원이대로가에 위치한 X플 러스빌딩은 구조를 외부에 드러낸 조건영의 건물 중 하나다. 최근 다른 어떤 것보다 텍토닉이 잘 드러나는 건축은 목구조, 특히 중목구조다. 서로 다른 힘을 받는 부재가 결합하는 결구는 구축술의 핵심으로 나타나고, 한옥에 서는 공포로 서양건축에서는 주두다. 우리가 곧은 보를 보면서 느끼는 쾌감은 이런 구조적 힘의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느끼며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 영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현대 건축가는 쿠마 겐고다. 목구조의 구축 원리를 이용하며 매우 자유로운 형태로 전환하는 건축에 감탄한다.

 

목구조는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이어온 건축이지만 현재 콘크리트에 밀려 완전히 소외되었다. 여러 한계가 많다. 한국은 목재 생산이 어려운 곳이라 주로 일본이나 캐나다 등 외국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동일하게 여러 건축가(예. 조남호, 최삼영, 김범관 등)도 목구조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특히 조남호의 교원그룹게스트하우스는 필자에게 목조건축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조남호는 지속적으로 목조건축으로 실험하면서, 최근에 구축 원리에 어긋나는 효과를 주는 텍토닉을 보여줬다. 인왕산 숲속쉼터는 목구조 구축을 숨겨 감춘다. 마치 목조 기둥 사이 보 위치를 비워두고 조명을 둬서 그 위 구조는 보이지 않는다. 무거운 지붕판이 매달린 것처럼 보이면서도 빛 덕분에 비물질적 효과를 준다. 목구조만이 아니라, 조적 구조도 구축술을 벗어난다. 통의동 브릭 웰(강예린·이치훈)은 벽 혹은 바닥에 있어야 할 벽돌을 공중에 띄웠다. 모르타르 시공으로 붙어있어야 하는 벽돌이 잘게 썰려 꿰여 공중에 떠 있으며 천장이 되었다. 고딕 성당의 돌이 공중에 떠 있어 주는 신비감과 유사하다. 이러한 실험은 구조와 피복(Bekleidung)의 엮임 혹은 전환은 최근 새로운 텍토닉 실험으로 재료의 속성을 탐구 하는 과정이다. 

 

건축에서 텍토닉은 서 있는 방식과 공간의 질감을 드러내면서, 건축 그 자체로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대부분 건축이 철근콘크리트로 일체식 구조인 경우이기에 이를 드러내려는 노출콘크리트, 내외장 피복을 같이 드러내려는 방식, 나아가 설비의 속살까지 드러내는 노출 방식 등이 자신을 드러내는 표현이 많이 나타나기도 한다. 요즘 카페에 가면 많은 곳에서 철골이나 목조는 구조적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피복과 사투를 벌이는 것처럼 건축 내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런 공간이 노출콘크리트와 같이 있으면, 짓다 만 것 같은 상태로 나타난다. 마치 18세기 말 영국에서 폐허미를 추구하며 세련된 것과 거리를 두는 방치된 방식을 숭고(Sublime)로 보던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완전한 날것 아니라 만들어진 날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한편, 한국에서 구축과 구조의 가치를 의식하면서 건축가는 최근 특히 오래된 건축도 지속적인 사용, ‘재생’으로 이 주제와 연결되지만 이는 나중에 별도로 다룰 것이다. 

 

여섯 번째는 도시성과 원시성이다. 둘은 대립적이지만 인간이 사는 법에 대한 근원적 질문에 건축적 대답이다. 우리가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보자.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냉난방된 실내에 집안에 머물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차로 이동하다가 다시 실내로 이동해 커피를 마시고 음식을 먹고 다시 집으로 오는 생활이다. 우리 시대 건축은 과거와 동일한가? 건축 단위를 해체하고 보면 다른 게 보인다. 우리가 사는 도시는 설비나 이동장치(공조기술, 냉 난방기, 엘리베이터 등) 등 기계가 우리 삶을 만든다. 기계의 관점으로 보면 건물이 아니라 기계 범위가 건축이다. 우리가 건물별로 구분하는 것은 인간이지, 기계는 서로 연결된 것이다. 사람들의 흐름을 가능하게 한 장치, 도시공간이 하나의 단위로 움직이는 현상, 등. 이런 공간에 사는 우리는 과거와 다른 인간이다!

 

그래서 건축을 도시차원으로 볼 필요가 있다. 건축가 렘 콜하스가 본격화했다. 그는 다층적인 사람의 흐름들과 기계장치 등을 서로 엮어서 건축을 조직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한 건물이 도시처럼 작동되거나 여러 건물을 엮어 하나의 도시적 흐름을 만들기도 했다. 프로그램으로 된 공간 사이 빈 공간(Viod)에서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우발적 활동(events)이 발생하도록 했다. 라빌레트공원 계획안이나 물랑세나르(Melun-Senart) 계획안에서 도시 접근이, 매코믹센터나 시애틀도서관에서 건축적 전략 등 초기 안에서 잘 나타난다. 도시적 관점에서 건축 구상은 다양한 변이를 거치며 한국적 상황에 따라 적용된다.

 

 

한국에서 가장 대규모의 도시건축 프로젝트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주)해안건축)로 3.6km의 단일 건물로 규모가 이미 도시다(도시 전체의 마스터플랜은 별도로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가 수립했다). 긴 선형으로 구불거리는 건물 형태는 공중에 떠 있는 구간에서 필요시 아래로 중축할 수 있도록 했다. 보행과 다르게 차량은 격자형 도로 구조 위에 떠 있는 형태다. 보다 작은 규모의 스페이스살 림(최정우+건축사무소 ㈜유니트 에이)은 1960년대 TEAM 10의 MAT건축의 사례로 건축형태보다 사람 들의 흐름과 행동을 중요시한 도시건축 방식으로 지어진 예이다. 보다 한국적인 도시건축의 예로 원불교 원남교당(조민석)이다. 오래된 도시 직조(일곱개의 골목길)를 연결하면서 특히 불치병 어린이 환자를 수용하는 병원과의 연계와 종교적 가치의 건축적 결합이 절묘하다.

 

건축관점에서 이와 반대로 가는 경우도 있다. 현대사회가 인간성의 근원적인 가치를 상실했다고 보는 것이다. 즉, 과거와 현재는 동일한 인간이지만 기술의 진화로 인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이는 19세기 산업화가 진행 중이던 유럽에서 중세건축을 소환하거나 공원이 만들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유지되었으나 이제는 사라진 생활방식이나 우리와 거리가 멀어진 자연일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 알도반 아이크는 사라진 생활방식을 아프리카 도곤족 마을을 연구해서 건축으로 적용하려고 했다. 후자는 춤토어(P. Zumthor)의 관심사이기도 해서, 현대문명을 제거해 야생적 근원 경험을 하도록 한 클라우스 채플이나 중앙에 식물을 두고 자세히 관찰할 수 있도록 한 서펀타인 파빌리온(2011)도 마찬가지로 이런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건축 작업이다. 일본의 후지모리 테루노부는 역사학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인데, 은퇴하고 본격적으로 건축가로 나서면서 원시 자연에서 첫 건축행위를 한 형태의 건축을 구현했다.

 

최근 한국 건축가들이 추구하는 공간은 내부에 원시 자연 요소를 끌어 들이는 것이다. 빛과 풍경을 넘어, 야생 자연 사물로 분위기를 채우는 것이다. 인간의 야생 자연과의 첫 관계가 드러난 건축이다.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은 현대 건축에 야생자연 요소를 둔다. 제주도에 그의 작품이 많은데, 수풍석 뮤지엄은 3개로 구분되어 각각 물(수), 바람(풍), 돌(석)을 가만히 느낄 수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방주교회, 그리고 나무와 바람 사이에 세워진 포도호텔도 그의 작품이다. 최근 많은 카페가 들어서는 마산바닷가 지역에 들어선 기운상자(조병수)는 단순한 형태에 중앙과 주변에 돌을 무심하게 두고 있다.

 

현재 한국건축의 흐름을 단순화해서 정리했다. 하지만 역시나 단순화의 위험에 빠진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럼에도 얼개만 본다는 점에서 간략하게 현재 펼쳐진 지형을 본 것이다. 그래서 조금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 한국 건축가 변화를 건축가 세대로 보완해서 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건축가 세대 간의 단절이 크다. 제일 앞선 세대는 개발 시대를 몸으로 겪으면서 건축을 정립하려 했고, 그 핵심에 한국성이 있었다. 첫 유학 세대(유학한 건축가뿐만 아니라 동시대 건축가 포함)는 넓고 다양한 방식을 접하고 자신의 길을 찾으려 하면서 앞선 세대와 연속성이 약하다. 즉, 각자 자신만의 건축 성취를 이루면서, 앞선 세대와 다른 길을 찾고자 했다. 이런 현상은 다음 세대 건축가들에게도 이어진다. 시대적이거나 공통적인 것보다는 개인적 경험이 더 건축적 영감이 된다. 선배 건축가들의 건축적 성취보다는 버내큘러 건축에 더 관심이 많다. 일본과 중국이 서구 건축을 일찍 흡수하고 건축 성취가 계승됐다면, 우리는 앞선 세대의 성취보다 외부 영향이 더 컸다. 그 열악한 풍토에서 현대 한국 건축가들은 고군분투한다. 실제, 이들의 건축에 대한 노력은 엄청나다. 

 

그런데 한국 건축 지형과 건축가 개인들의 노력에 비해 성과는 부족하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여전히 토목건설적 사고로 건축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데, 좋은 건축에 비용 지급을 꺼리거나 아니면 이미 창원 빅트리에서 봤듯이 건축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나마 작품 건축도 해외건축가들에게 의존하며, 한국 건축가를 낮게 취급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공모전 하나만 보자. 복잡하고 자세한 용도와 엄격한 범위 내에서 정해진 문제 풀이를 요구한다. 따라서 건축가는 새로운 시도와 제안을 할 수 없고, 익숙한 관성에 따라 위험하지 않은 건축 디자인 및 방향(옛날식 표현의 난무)을 제시한다. 게다가 설계변경으로 인한 그나마도 제대로 지어지지도 않는다. 건축미학은 문제 제기(프로그램)부터 참여하고 디테일(감각적 완성)까지 완료해야 한다. 이러한 것이 힘들어, 건축 가치를 추구하는 건축가들이 공모전을 기피 현상이 발생한다. 건축가 개인이 역량이 있어도 성과 내기 어려운 구조다. 특히 지방으로 내려오면 거기에 더해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건설 현장이 너무 날림이라서, 충실히 짓는 것 자체가 어렵다. 새로운 시도가 아니라 기본이 안 된 기술 문제로, 건축은 조악한 마감 아래에 있다.

 

 

떨어져 보면, 한국 건축가는 더 거대한 벽 아래서 각개전투를 벌이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 사회에 근원적인 벽이 있다. 건축을 보는 방식이다. 건축은 개발시대에는 생산하는 시설, 학습하는 시설, 잠자는 시설로 기능 충족에 맞춰졌다면, 이제는 돈 되는 귀한 상품이다. 단순화 시켜보면, 건축은 돈이 되는 아파트이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저쪽(건축예술)으로 보는 이분법이 존재한다. 이 글 초반에 “건축은 예술이다”, “건축은 모두의 예술: 모두의 건축이고 모두가 건축가이다”라는 문구로 시작했다. 초점은 ‘어떤’ 건축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두고 건축 지형을 펼쳐봤다. 그런데, 건축은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보고 접하면서 경험한다. 그 경험을 통해 가치가 인정 될 필요가 있다. 건축은 자산 증식의 수단을 넘어서, 감각적으로 경험하고 느끼며 나아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드는 부분까지 평가되어야 한다. 그것이 건축을 예술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더 많은 다수(모두이면 좋지만)가 건축을 일상적 작품으로 향유하기를 바란다. 한국 건축가들은 준비되어 있다. 고민도 깊고 연구도 많고 노력도 많다. 이제 좋은 건축, 예술적 가치 있는 건축이 볼 수 있는 ‘모두’의 시선 전환이 필요하다.

 

 

글. 신 건 수 (경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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