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공명은 끝나지 않는다
2026 창원조각비엔날레 《공명장》,두 예술감독의 시선으로 돌아보는 조각과 도시의 만남
조각이 전시장을 벗어나 도시의 거리와 시장, 오래된 역사 공간으로 들어왔다. 익숙한 풍경 속에 놓인 작품은 시민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건넸고, 일상의 공간이 또 다른 전시장이 되었다. 서로 다른 역사와 기억을 품은 창원·마산·진해를 무대로 펼쳐진 2026 창원조각비엔날레 《공명장》 이야기다. 오는 11월 15일 폐막을 앞둔 지금, 이번 비엔날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남기고 있을까. 전시를 이끈 조혜정·장쥔 공동예술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공명장》의 출발점과 작품에 담긴 이야기, 현장에서 발견한 뜻밖의 순간들을 살펴보았다. 서로 다른 두 시선이 만나 완성해 온 전시, 그리고 그 울림이 도시의 일상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돌아본다.
조각이 지나간 자리, 도시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오래 붙들고 있었던 질문은
‘창원은 어떤 도시인가’였습니다."
조혜정 공동예술감독은 이번 비엔날레의 출발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마산과 창원, 진해는 행정적으로 하나가 되었지만 서로 다른 역사와 기억, 생활의 리듬을 간직한 도시다. 조 감독은 이러한 차이가 사라져야 할 대상이 아니라 창원이라는 도시를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고유한 특성이라고 바라봤다.
"서로 같아지지 않은 채 한 도시에 함께 존재하는 것,
저는 그것이 창원이라는 도시의 중요한 정체성이라고 보았습니다."
그에게 ‘공명’은 서로 다른 존재가 하나의 모습으로 같아지는 일이 아니다. 차이를 유지하면서도 영향을 주고받고, 그 관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공명장》이라는 주제 역시 창원이 지닌 이러한 도시적 특성에서 출발했다.
반면 장쥔 공동예술감독은 조금 다른 질문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알고리즘이 취향을 예측하고 인공지능이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오늘날, 연결은 늘어나지만 사람과 세계 사이의 관계는 오히려 얕아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장 감독은 독일 사회학자 하르트무트 로자의 공명 이론을 전시로 구상하는 실마리로 삼았다.
"모두가 같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리듬이 어긋나고 겹치는 과정에서 새로운 울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개념을 조각의 물질성과 무게, 창원의 서로 다른 역사적 공간, 작품에 응답하는 관람객이라는 세 가지 방향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두 감독의 출발점은 달랐지만 하나의 생각으로 이어졌다. 공명은 기획자가 미리 만들어 놓는 결과가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공명을 기획자가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작품과 장소, 사람이 만날 조건은 마련할 수 있습니다. "
조혜정 감독의 이 말은 이번 비엔날레의 기획 방향을 함축한다. 그렇게 《공명장》은 작품을 전시장 안에 배치하는 데 머물지 않고 도시의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전시로 확장되었다.
서로 다른 두 시선이 하나의 전시가 되기까지
이번 비엔날레의 기획 과정 또한 ‘공명’이라는 주제를 닮아 있었다. 두 감독은 상하이 국제공공예술연구소에서 함께 연구하며 인연을 맺었다. 이후 조혜정 감독의 제안으로 공동 기획을 시작했다. 조 감독이 전시의 전체적인 방향과 구조, 기획·운영 전반을 맡았다면 장 감독은 중국에 기반을 둔 경험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해외 작가 및 국제협력 분야를 연결했다. 두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하나의 생각으로 의견을 통일하는 일이 아니었다.
“서로의 생각을 하나로 맞추는 것보다, 다른 관점이 만났을 때 어떤 질문이 생기는지를 살피는 일이 중요 했습니다.” 조혜정 감독의 설명이다. 장쥔 감독 역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하나의 결론에 합의하는 것보다 서로의 차이를 기획의 방법으로 삼는 일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방향은 특별전에서도 드러난다. 조혜정 감독은 《조각 이전의 조각》을 통해 동아시아의 ‘풍류’에서 공명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장쥔 감독은 《창원 조각 아틀라스》를 통해 도시의 조각 자산을 연결하고, 전시 이후에도 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했다.
작품 선정에서도 공통된 원칙이 있었다. 단순히 창원의 역사와 풍경을 소재로 삼은 작품보다는 작가의 오랜 탐구가 창원이라는 구체적인 장소와 만났을 때 어떤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살핀 것이다. 장 감독은 특히 지역을 작품의 배경이나 장식적인 소재로 소비하는 방식을 경계했다. 창원의 장소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곳과 관계를 맺는 위촉 작품을 중요하게 고려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물론 실제 전시를 구현하는 일은 계획보다 복잡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도시의 공공 공간에서 전시를 구현하고 조율하는 일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했습니다."
장 감독에 따르면 일부 위촉 작품은 현장 조건에 따라 크기와 설치 위치를 조정해야 했고, 시민 참여 프로젝트에는 예상보다 많은 신청이 이어졌다. 《창원 조각 아틀라스》 또한 관람객의 반응을 바탕으로 검색 키워드를 수정하며 발전해 왔다.
조혜정 감독 역시 실제 전시가 시작된 이후에는 관람객이 어떻게 이동하고 머무는지 살피는 일이 중요해 졌다고 설명했다. 기획자가 예상한 동선과 실제 시민들의 경험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감독에게 《공명장》은 정해진 계획을 완벽하게 실행하는 전시가 아니라 작품과 장소,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응답하는 전시였다. 서로 다른 판단과 관점이 마주하고, 그 차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획 과정 자체가 ‘공명’을 실천하는 일이었던 셈이다.
조각과 도시가 만난 공간들
《공명장》의 또 다른 특징은 조각을 전시장 안에 머물게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성산아트홀을 비롯해 창원의집과 창원역사민속관, 진해역 일대, 마산어시장 등 도시 곳곳으로 전시 공간을 확장했다. 두 감독은 작품이 놓이는 장소를 단순한 배경이 아닌 작품의 의미를 함께 만들어가는 중요한 요소로 바라봤다. 그렇다면 두 감독이 시민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무엇일까. 인터뷰에서 꼽은 작품들을 따라가 보면 이번 비엔날레가 도시의 역사와 장소를 어떻게 새롭게 읽어냈는지 발견할 수 있다.
성산아트홀|빛으로 다시 읽은 역사의 기억
장쥔 감독이 추천한 작품 가운데 하나는 한국 서예가 윤영미와 중국 사진가 리순이 공동 제작한 <빛의 명문: 임진왜란 비기>다.
성산아트홀 입구의 대형 유리 커튼월에 설치된 작품은 이순신과 명나라 장수 등자룡의 시구를 바탕으로 문자와 빛의 이미지를 결합한다. 역사 속에서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 기억을 환기하고, 전쟁의 기억을 넘어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창원의집|오래된 공간에서 울리는 새로운 목소리
창원의집에서는 전통적인 공간과 현대조각의 만남이 흥미롭다. 중국 작가 딩이의 <성수비>는 비석 문화와 전통적인 우주관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며, 왕사오창의 <한옥 아집>은 동서양의 지적 교류 전통을 연결한다.
장 감독이 특별히 주목한 작품은 마날 알도와얀의 <내 이야기를 들어주세요>다. 세 개의 황동 입술 조각은 조선시대 격쟁의 전통에서 착안했다. 관람객은 직접 조각을 두드려 소리를 낼 수 있다.
장 감독은 이 작품이 “누가 발언할 수 있고 누구의 목소리가 사회에서 들리는지”를 묻는다고 설명했다. 조각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울림을 만들어내는 경험을 통해 작품의 질문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진해역|100년의 시간을 품은 장소와 작품의 만남
“작품만 따로 보기보다 100년 된 역의 공간과 함께 경험해 보셨으면 합니다.”
조혜정 감독은 진해역에 설치된 김수자 작가의 작품을 추천했다. 오랜 시간 사람들의 이동을 지켜본 역사 공간에서 작품을 만날 때, 관람객은 역의 구조와 그곳에 쌓인 시간을 새롭게 느낄 수 있다. 작품을 통해 장소를 다시 바라보고, 장소를 통해 작품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진해문화원|벚꽃에 담긴 또 다른 이야기
왕정홍의 <벚꽃>은 벚꽃 브로치를 매개로 중국 항저우와 진해의 풍경을 연결한다. 장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벚꽃 이라는 친숙한 이미지 이면에 얽힌 전쟁과 식민지의 역사적 기억을 함께 돌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산어시장|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공존의 의미
조혜정 감독이 소개한 유수진 작가의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는 약 1,000개의 통조림으로 창원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국적별 비율을 표현한 작품이다.
“서로 다른 고향과 기억을 지닌 사람들이 한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작품이 놓인 곳은 사람들이 매일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다. 조 감독은 시장이 전시를 위해 비워 둔 공간이 아니라 전시 이전부터 시민들의 삶이 이어져 온 곳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전시장에서는 관람객이 작품을 찾아가지만, 도시에서는 길을 걷거나 장을 보다가 우연히 작품과 마주한다. 주변의 소리와 사람들의 움직임, 장소가 품은 시간까지 작품의 일부가 된다.
이러한 만남이야말로 두 감독이 《공명장》을 통해 만들어 내고자 했던 경험이었다.
작품과 관객 사이에 일어난 공명
전시가 시작된 이후 두 감독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무엇이었을까. 조혜정 감독은 마산 어시장 상인들이 작품에 관심을 보이며 전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을 떠올렸다.
"전시가 시민들의 생활 공간 안으로 들어가면
새로운 만남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느끼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작품 앞에 머물며 도슨트의 설명을 귀 기울여 듣는 모습 역시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전국의 미술대학 학생들이 단체로 전시를 찾아오는 일도 뜻깊었지만, 무엇보다 평소 미술과 거리가 있던 시민들이 작품을 만나는 경험에 주목했다.
시민 참여 프로그램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창원에 거주하는 이주민과 유학생들이 자신의 언어로 작품을 해석하도록 한 <공명 도슨트>가 대표적이다. 조 감독은 “자신의 경험과 언어로 작품을 해석 하고 응답할 수 있다면 그것도 중요한 참여입니다.”라고 말했다.
관람객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전문가의 해석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읽고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 자체가 예술에 참여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장쥔 감독에게는 《창원 조각 아틀라스》를 활용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관람객들은 작품 자체뿐 아니라 작품과 창원의 지역 역사, 문화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궁금해했고, 아틀라스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휴대전화로 이용할 수 있는 이 디지털 지도에는 136개의 키워드가 마련되어 있다. 관람객은 키워드를 따라 작품과 장소, 지역의 역사와 문화 사이의 연결고리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경로로 도시를 탐색할 수 있다. 관객의 반응은 전시를 변화시키기도 했다. 장 감독은 관람객의 의견을 반영해 아틀라스의 검색 키워드를 수정하는 등 플랫폼을 지속적으로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두 감독은 이러한 경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전시가 끝난 뒤의 과제를 함께 이야기했다. 조혜정 감독은 비엔날레가 2년에 한 번 열리는 만큼 시민들과 맺은 관계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전시가 열릴 때만 시민을 만나는 것으로는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전시 이후에도 교육과 강의, 도시의 작품을 함께 살펴보는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이 조각과 만날 기회를 꾸준히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공명장》이 보여준 것은 작품에 대한 하나의 정해진 해석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예술과 관계를 맺어가는 다양한 가능성이었다.
전시는 끝나도, 조각은 도시에 남는다.
11월 15일, 《공명장》은 막을 내린다. 그러나 전시를 통해 만들어진 경험과 기억, 도시와 예술 사이에 형성된 관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두 감독은 전시 이후의 시간을 특히 중요하게 바라봤다. 장쥔 감독은 《창원 조각 아틀라스》가 이번 비엔날레의 장기적인 문화적 자산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아틀라스는 역대 비엔날레의 공공조각과 역사 기념비, 새롭게 제작된 위촉 작품을 도시의 역사와 장소적 맥락 속에서 연결한 디지털 플랫폼이다. 작품의 위치를 안내하는 역할을 넘어 창원이 지닌 조각 자산을 기록하고 연구하는 기반으로 활용될 수 있다.
장 감독은 향후 아틀라스가 상시 운영되는 플랫폼으로 발전해 작가들의 현지 조사와 창작을 지원하기를 기대했다. 또한 창원이라는 장소에서 출발하는 위촉 창작을 확대하고, 국제 조각 네트워크와의 교류를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혜정 감독은 창원이 ‘조각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창원이 ‘조각 도시’라는 정체성은 작품의 수나 유명한 조각가의 이름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 조각들이 지금 시민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공공조각의 기록과 보존, 작품과 장소에 관한 연구, 시민들과 형성한 관계가 다음 비엔날레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시가 열리지 않는 시간에도 도시 안에 무엇이 축적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일회성 국제 전시를 넘어 지속적인 문화 플랫폼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이는 창원문화재단이 비엔날레를 통해 지역 문화예술의 가치를 확장해 나가는 데에도 중요한 과제다. 전시를 통해 발견한 도시의 문화적 자산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시민들이 일상에서 예술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이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터뷰의 마지막, 두 감독은 시민들에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전시를 경험해 보기를 권했다.
조혜정 감독은 미술을 미리 공부하거나 정답을 알고 전시장을 찾을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했다. 작품 가까이에 머물며 좋거나 낯설다는 감정을 느끼고, 자신의 질문에서 출발하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장쥔 감독 역시 빠르게 움직이는 일상 속에서 잠시 걸음을 늦추고 작품과 마주해 보기를 권했다.
"조각은 우리를 재촉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잠시 멈추어 작품과 마주할 때까지 기다리고,
그 순간 각자의 방식으로 응답합니다."
한 사람에게는 익숙한 시장의 풍경이 다른 사람에게는 오래된 역사 공간이, 또 누군가에게는 처음 만나는 낯선 조각이 새로운 울림으로 남을 것이다. 전시는 끝나지만 작품과 장소, 사람들 사이에서 시작된 질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거리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의 도시를 이전과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 공명은 다시 시작된다.
공명은 끝나지 않는다. 그 울림은 이제 창원의 일상 속에서 이어진다.
글. 윤 해 리 / 사진. 페르소나 위 아 / 자료제공. 창원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