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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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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 흙에서 되살린 지역의 기억 <도예가 김 진 량>

전통 도예가 명장 김진량이 빚어낸 도자의 시간

도자기는 흙으로 만든다. 너무도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김진량 명장의 이야기는 바로 그 당연한 사실에서 다시 시작된다. 그의 작품은 국내외 여러 소장가에게 전해지며 전통 도자의 깊이를 알려왔다. 김 명장에 따르면 셰이크 만수르를 비롯한 해외 주요 인사와 BTS 멤버 중 한 명 등도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도자 세계를 움직이는 힘은 이름난 소장가의 목록보다 더 근본적인 곳에 있다. 바로 흙이다. 그는 도자기를 형태나 기교의 결과 물로만 보지 않는다. 무엇보다 먼저 흙을 보고, 물을 보고, 불을 본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붙들어온 것은 흙이다. 오래전 우리 도자가 태어났던 바로 그 재료를 찾기 위해 그는 십수년 동안 전국을 다녔다.
통도요 송암 김진량. 그는 스스로를 전통 도자기 명장으로 소개하며, 도자를 단순한 그릇이 아니라 삶과 정신, 지역의 시간이 담긴 존재로 이야기한다. 도예를 시작한 계기를 묻자 그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먼저 꺼냈다. 절에서 쓰이던 불기 그릇을 보며 자랐던 시간이 그의 도예 인생의 출발점이 되었다. “저 그릇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라는 궁금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졌고, 결국 그는 도자를 재현하고 복원하는 길로 들어섰다.
많은 이들이 도자기를 만들기 위한 기능과 기술에서 시작한다면, 김진량 명장은 재료에서 시작했다. 은사인 도성 스님은 그에게 도자를 재현하고 복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료가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고려와 조선의 도자가 품었던 색과 질감, 정신을 되살리려면 그 시대에 쓰였던 흙을 먼저 찾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그는 만드는 법보다 흙을 찾는 일에 먼저 매달렸다.

 

 

경상도 연질백토, 작품의 시작이 되는 흙

김진량 명장이 오랜 시간 연구해온 재료는 경상도 연질백토다. 그는 백토를 크게 연질백토와 경질백토로 나누어 설명한다. 경질백토가 주로 강원도 양구나 경기도 광주 일대에서 나는 흙이라면, 연질백토는 경상도에서 주로 나는 흙이라고 말한다. 특히 찻그릇과 사발 등 우리 전통 사발의 중요한 재료가 바로 이 연질백토였다고 강조한다.
그에게 연질백토는 단순히 도자기를 만드는 흙이 아니다. 지역의 기억이자, 전통을 전통답게 만드는 근본이다. 그는 오늘날 시중에서 사용되는 백토 중 상당수가 수입 재료라고 설명하며, 옛 고려와 조선의 도자기에 쓰였던 흙과는 색과 질감이 다르다고 말한다. 그가 보여준 연질백 토의 빛은 인위적인 채색보다 흙에서 우러난 원색에 가깝다. 그의 표현처럼 “흙에서 나는 원색”은 덧입힌 장식이 아니라 재료 자체가 품고 있는 결이다.
그래서 그는 “도자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흙”이라고 거듭 말했다. 아무리 장작가마를 쓰고, 아무리 전통적인 형태를 따라 만든다 해도 옛 재료를 쓰지 않으면 전승이나 전통이라는 말을 붙이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김진량 명장에게 흙은 도자기의 출발점이자, 작품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전승, 전통, 현대를 가르는 기준

김진량 명장이 특히 강조한 것은 공예를 바라보는 기준이었다. 그는 공예를 전승공예, 전통공예, 현대공예로 나누어 설명한다. 전승공예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쓰였던 재료를 그대로 사용하고, 형태까지 옛것을 재현·복원하는 작업이다. 전통공예는 옛 재료를 바탕으로 현대인이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현대공예는 오늘날의 여러 재료를 활용해 현대적인 형태를 창작하는 작업이다.

이 구분에서 핵심은 다시 재료다. 전승과 전통은 옛 재료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반면 그 재료가 사라지거나 다른 재료로 대체되면, 아무리 전통적인 형태를 따른다 해도 그는 그것을 현대공예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단지 그릇의 모양을 되살리는 일이 아니다. 사라져가는 재료를 붙들고, 그 재료가 가진 시간과 성질을 작품 안으로 다시 불러오는 일이다.
김진량 명장은 전통을 ‘고집’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고집은 낡은 것을 그대로 붙드는 태도가 아니다. 쉽게 바꿀 수 없는 본질을 지키려는 마음에 가깝다. 흙을 찾고, 물을 고르고, 장작가마의 불을 기다리는 긴 과정은 모두 그 고집의 일부다. 반대로 현대는 ‘창작’이라고 말한다. 오늘의 감각과 형태를 만들어내는 일 역시 필요하지만, 그에게 전통 도자는 먼저 재료의 근본 위에 서야 한다.

 

 

사발과 향로, 달항아리와 오자기

김진량 명장의 주요 작품은 사발, 향로, 달항아리, 다구 세트, 주병 등으로 이어진다. 그는 작품 하나하나를 자식처럼 여긴다고 말한다. 도자기를 만든다는 것은 사람의 몸을 만드는 일과도 같고, 완성된 작품을 떠나보내는 일은 자식을 시집보내거나 장가보내는 마음과 닮아 있다고 했다. 그의 도자가 단순한 생활용 그릇을 넘어 작품으로 읽히는 이유는, 그 안에 재료와 형태뿐 아니라 긴 시간의 마음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전통 도자를 청자, 백자, 분청, 오자기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중 오자기는 검은빛을 띠는 도자기다. 상대적으로 사람들에게 덜 알려져 있지만, 김진량 명장은 이 오자기를 재현한 작업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그는 과거 사람들이 검은색을 선호하지 않아 오자기가 점차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하면서도, 오늘날 젊은 세대의 취향에서는 오히려 검은색이 새롭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본다. 사라졌던 색을 다시 불러오는 일은 하나의 도자기를 복원하는 일을 넘어, 잊힌 미감과 취향의 가능성을 되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그가 지금도 가장 어렵게 여기는 재현 작업은 비색청자다. 백자와 사발, 흑자의 재현은 어느정도 마쳤지만, 비색 청자는 여전히 자연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말한다. 같은 재료와 같은 방식으로 작업해도 어떤 때는 원하는 빛이 나오고, 어떤 때는 나오지 않는다. 그는 비색청자의 색이 단순히 유약을 발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흙과 유약, 불이 함께 만들어내는 결과라고 설명한다. 결국 비색은 기술만으로 완전히 장악할 수 없는 자연의 영역이기도 하다.

 

기다림으로 빚는 그릇

도자기는 기다림의 예술이다. 김진량 명장은 옛 어른들이 도자기를 ‘환갑’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도자기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사람의 손이 62번 이상 간다고 해서 붙은 말이라고 했다. 흙을 만지고, 형태를 잡고, 말리고, 다듬고, 굽는 동안 작가의 손과 마음은 수없이 작품을 오간다. 그렇게 긴 시간을 거치며 도자기에는 만든 사람의 마음이 스민다.
그의 작업은 빠르게 많이 만들어내는 방식과 거리가 멀다. 산에서 흙을 캐와 수비하고 숙성시키는 데만 최소 6개 월 이상이 걸리고, 물과 유약 역시 시간을 들여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만드는데 2~3개월이 걸린다 해도, 그 전 과정을 모두 합하면 결국 1년에 불을 한 번 땔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전통 재료를 바탕으로 하는 도자는 그만큼 손이 많이 가고, 기다림이 필요한 일이다.

장작가마 역시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과정이다. 그는 장작 중에서도 소나무를 사용한다고 말한다. 소나무는 완전히 재가 되고, 송진 때문에 불길이 길고 화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장작가마에서 튄 재는 도자기 표면에 닿아 자연 유약처럼 변한다. 그는 통도요에서는 화학적인 유약을 쓰지 않는다고 설명하며, 흙과 재가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중요하게 여긴다.
하루의 작업도 새벽 3시에 시작한다. 그는 기운이 가장 강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벽 3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작업하고, 이후에는 강의와 미팅, 사람들과의 만남을 이어간다. 그에게 도자기는 일정한 생활의 리듬이자, 스스로를 다잡는 수행에 가깝다.

 

깊이 들어가는 일

오랜 세월 도자를 해오며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을까. 그는 도자기를 업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자신을 깨우치는 일이라고 말했다. 때로는 1~2년 동안 작품에 손을 대지 않을 때도 있다고 했다. 그 시간은 그만두는 시간이 아니라, 자연을 보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도예가에게 중요한 것은 몇 년을 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들어갔는가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도자기 전시를 자주 보러 가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음악, 미술, 인문학, 영화 등 도자기와 직접적으로 같지 않은 세계를 넓게 본다. 한 분야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와 연결된 다른 세계를 함께 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의 작업이 단순한 기능이나 기술을 넘어 인문학적 사유를 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자는 흙과 불의 결과물이지만, 동시에 사람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도자기를 빚는 일이 결국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내 자신을 다시 한 번 더 되돌아보고, 내 자신을 보는 것과 같다”고 답했다. 도자기를 빚는 일은 곧 자신을 공부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김진량 명장의 작업 전체를 관통한다. 흙을 찾는 일도, 사라진 도자를 복원하는 일도, 가마 앞에서 기다리는 일도 결국 자신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묻는 과정이다.

 

 

공백을 메우는 사람

김진량 명장이 자신의 작업에 부여하는 역할은 분명하다. 그는 조선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도자기 기록의 공백이 있었다고 말한다. 기록이 부족했기에 재현과 복원이 어려웠고, 그 공백을 조금이라도 메우는 것이 자신의 도자기, 통도요 도자기의 역할이라고 했다.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하고, 우리 도자의 맥을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그것이 그가 말하는 도자기의 가치다.
그래서 김진량 명장의 작품 세계는 한 개인의 장인정신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의 작업은 경상도 흙의 성질을 찾고, 잊힌 도자의 색을 복원하고, 전승과 전통의 기준을 다시 묻는 일이다. 동시에 지역의 재료가 어떻게 예술이 되고, 예술이 어떻게 다시 지역의 기억을 붙드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다.
흙은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다. 손끝에서 그릇이 되고, 불 속에서 빛을 얻고, 누군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 다시 시간을 쌓는다. 김진량 명장이 되살린 것은 단지 하나의 도자기가 아니다. 경상도의 흙이 품고 있던 색, 사라져가던 재료의 가치,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전해야 할 지역의 기억이다. 그의 도자는 그렇게 묻는다. 우리가 오래 붙들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이 시대의 손으로 다시 빚어야 할 전통은 무엇인가.

 

 

 

 

 

 

 

#예술#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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