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선] 지금 미술의 장면들
사진가 조현상,《검은 날벌레》로 포착한 현대사회의 풍경
우리는 매일 수많은 불빛을 지나 어딘가로 향한다. 거대한 산업시설이 들어서고 도시의 풍경이 빠르게 바뀌는 동안, 그 안을 살아가는 개인은 무엇을 보고 느낄까. 사진가 조현상 작가는 익숙한 도시의 주변부에서 이러한 질문을 발견한다. 그의 연작 《검은 날벌레》(2025~2026)는 평택과 용인의 반도체 산업단지 주변을 배회하며 포착한 이미지들을 통해 거대한 산업 시스템과 개인의 감각이 충돌하는 순간을 탐색한다.
산업 도시의 풍경에서 발견한 배회의 감각
《검은 날벌레》는 작가가 평택에 거주하며 경험한 도시의 변화에서 출발했다. 반도체 산업단지의 개발과 운영으로 지역의 풍경이 달라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빠르게 작동하는 산업 시스템과 그 안을 살아가는 개인의 감각 사이 간극이 존재한다고 느낀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감각을 밤마다 인공조명 주변을 맴도는 날벌레의 움직임에 비유했다. 날벌레가 빛을 좋아 해서가 아니라 ‘배광 반응’이라는 본능적인 행동으로 빛 주변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그 방향이 반드시 스스로 선택한 것은 아닐 수 있 다는 생각이다.
평택에서 시작된 촬영은 용인으로 이어졌다. 두 지역의 반도체 산업단지 주변에서 마주한 풍경은 서로 다른 장소임에도 묘하게 닮아 있었다. 작가는 여기에서 시각적인 기시감뿐만 아니라 시간적인 기시감도 발견했다.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된 산업단지의 구조가 오늘날 첨단 산업단지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수집한 사진들을 한데 모으자 시간과 장소의 순서가 흐려졌다 작가는 이러한 감각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 고해상도와 저해상도, 컬러와 흑백, 사물과 풍경을 의도적으로 뒤섞었다. 사진들은 하나의 이야기를 순서대로 설명하기보다, 서로 다른 장면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도록 만든다.
빛과 흔적이 만들어내는 낯선 이미지
흥미롭게도 《검은 날벌레》에는 날벌레가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도로변의 파편, 어둠 속의 인공조명, 땅에 남겨진 흔적처럼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는 장면들이 화면을 채운다.
<밤의 파편>(2025)은 도로 난간 아래 흩어진 검은 파편들을 포착한다. 강한 빛 아래 드러난 사물은 익숙 하면서도 낯설다. <오늘, 아니 어쩌면 내일>(2025)은 번지는 빛과 흐릿한 형상이 뒤섞여 구체적인 대상을 쉽게 알아볼 수 없게 한다. <유가 표지판>(2026)에서는 어둠 속에서 강렬하게 빛나는 표지판의 뒷면이 화면을 압도한다. <중첩>(2026)은 땅 위에 반복적으로 패인 굴곡과 균열을 통해 시간의 흔적이 포개진 듯한 풍경을 보여준다.
이 이미지들을 연결하는 것은 특정한 장소나 사건이 아니라 ‘배회하는 시선’이다. 아침 햇살과 노을빛, 밤의 인공조명은 서로 다른 시간에 존재하지만 사진 속에서는 시간을 구분이 흐려진다. 관람자는 이미지 사이를 오가며 자신만의 관계와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조현상 작가는 이러한 경험을 전시 공간으로도 확장했다. 2026 대구사진비엔날레 신진작가 특별전에서는 가벽을 활용한 미로형 동선으로 작품을 선보였다. 관람객이 좁고 어두운 통로를 이동하며 사진과 마주하게 함으로써, 작가가 산업단지 주변에서 경험한 배회의 감각을 공간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그의 사진은 산업사회의 풍경을 기록하면서도 특정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의 중심보다 그 주변부를 바라보고 분명한 목적지 보다 움직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각에 집중한다. 우리는 무엇을 향해 움직이고 있을까. 조현상 작가의 《검은 날벌레》는 익숙한 불빛과 풍경을 낯설게 바라 보게 하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방향을 다시 질문한다.
튜나리 작가, 《LIME STUDY》로 되짚는 도시의 흔적과 시간
한때 누군가의 집이었던 공간이 사라지면 그곳에 머물던 기억은 어디로 갈까. 오래된 건물이 철거되고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 지는 동안, 우리는 사라진 장소의 흔적을 얼마나 기억할 수 있을까. 튜나리 작가는 이러한 질문을 사진과 조각, 설치 작업으로 풀어낸다. 재개발로 사라진 고향의 기억에서 출발해 건축물을 이루던 재료의 기원을 추적하고, 그 안에 축적된 시간을 탐색한다. 그의 작업은 한 개인의 기억에서 시작하지만 점차 도시의 산업사와 인류 문명, 지구의 오랜 시간으로 확장된다.
사라진 고향에서 시작된 물질의 탐색
튜나리 작가의 《LIME STUDY》는 재개발로 사라진 부산 초량3동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어린 시절의 풍경이 남아 있던 동네가 철거되면서, 작가는 그 공간을 이루고 있던 건축 재료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건물은 사라졌지만 그곳을 지탱하던 콘크리트와 시멘트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사라진 장소를 기억하는 방법으로 건축 재료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탐색을 선택한 것이다.
작가는 토지지적도와 건축물대장을 살펴보며 건물의 역사를 추적하고, 오래된 항공사진과 한국 시멘트 산업 관련 자료를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시멘트의 주요 원료인 석회석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직접 광산을 찾아가 석회석을 채굴하기 시작했다. 수집한 석회석은 다시 작업의 재료가 된다. 작가는 이를 9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 직접 시멘트 재료를 만들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조각이나 사진을 담는 바탕으로 활용한다. 일반적으로 사진이 종이나 화면 위에 이미지를 남긴다면, 튜나리 작가의 작업에서 는 시멘트와 석회석이 기억을 담아내는 물질적 표면이 된다.
〈Maternal Family photo before I was born〉(2025)은 이러한 작업 방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가 태어나기 전인 1983년에 촬영된 가족사진을 2019년 스캔한 뒤, 시멘트 위에 UV 프린트로 옮겼다. 오래된 가족사진은 단순한 평면 이미지가 아니라 두께와 무게를 지닌 하나의 조각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진 속 과거의 시간과 시멘트라는 물질이 품은 시간이 겹치면서, 작품은 기억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개인의 기억에서 지구의 시간으로
튜나리 작가의 작업에서 석회석은 단순한 조각 재료가 아니다. 오랜 지질학적 과정을 거쳐 형성된 석회석은 인간의 손을 통해 건축 재료가 되고, 도시를 이루는 구조물로 사용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건물이 철거되면 다시 파편으로 남는다. 작가는 이러한 물질의 이동과 변화를 따라가며 서로 다른 시간의 층위를 연결한다. 《LIME STUDY》 연작은 이러한 탐색을 사진과 조각, 기록물의 배열로 보여준다. 2026년 갤러리더씨에서 선보인 〈Lime Study plane ver〉는 수집한 이미지와 석회석, 조각, 디지털 프레임 등을 결합한 작업이다.
서로 다른 재료와 기록들은 하나의 장면으로 정리되기보다 각자의 시간과 의미를 품은 채 나란히 놓인다. 〈LIME Study Ver.3〉(2026)에서는 이러한 탐색이 더욱 입체적으로 확장된다. 흰 자작나무 테이블 위에 수집한 이미지와 직접 채굴한 석회석, 화석, 산호 조각, 조명과 조각 등이 함께 배치된다. 마치 지질학적 표본과 개인의 기록을 모아놓은 연구실처럼, 작품은 관람객이 각각의 물질과 이미지가 지닌 시간을 살펴 보도록 이끈다. 특히 이 작업에서 주목할 점은 시간의 규모가 끊임없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어린 시절과 가족의 기억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근대 산업화의 역사로 이어지고, 다시 약 5억 년에 걸친 지구의 지질학적 시간으로 확장된다. 작가는 이를 '딥 타임(Deep Time)'이라는 개념과 연결하며, 개인의 삶 역시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심은 공간 자체를 활용하는 설치 작업으로도 이어진다. 2026년 대구예술발전소에서 선보인〈헛 기둥(Heot-Gidung)〉은 건물의 하중을 지탱하지 않는 비기능적 구조물이다. 일반적인 기둥이 건축물을 지지하기 위해 존재한다면, 이 작품은 실질적인 구조적 기능 없이 공간을 관통한다. 건축의 형태를 빌리면서도 본래의 기능에서 벗어나,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건축 구조와 재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튜나리 작가는 2026 대구사진비엔날레 신진작가 특별전에서도《LIME STUDY》를 선보이며 사진이 기록을 넘어 물질과 공간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했다. 그의 작업은 사라진 장소를 과거의 모습 그대로 복원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곳을 이루던 물질과 남겨진 기록을 따라가며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다시 감각하도록 한다.
건물은 사라져도 그것을 이루던 물질의 시간은 계속된다. 튜나리 작가의 작품은 우리가 잃어버린 장소의 기억이 어디에, 어떤 형태로 남아 있는지를 다시 질문한다.